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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

벼리 | 기사입력 2005/04/13 [05:45]

이뭐꼬?

벼리 | 입력 : 2005/04/13 [05:45]
▲ 화성시 태안읍 화산에 있는 용주사에 희한한 편액이 걸려 있다. 천보루(또는 홍제루)의 홍제루란 편액이 그것. 사진은 그 일부.     © 2005 벼리
 
용주사(龍珠寺) 경내에 들어서면 천보루(天保樓)가 나타난다. 이 천보루를 지나 곧바로 뒤로 돌아서면 홍제루(弘濟樓)다! 누각 하나에 앞에는 천보루란 편액을 내걸고 다시 뒤에는 홍제루란 편액을 각각 내건 탓이다.
 
하나의 누각에 이름을 앞뒤로 붙였으니 기이한 일이다. 필시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 번 올려다볼 일이 두 번 이상으로 늘어나며, 잠시 눈맛이나 즐길 일이 의외의 당혹감에 빠져 망연자실 바라보게 만든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별 일이다. 편액의 오른쪽 위 모퉁이에 아주 작은 한반도가 윤곽선 형태로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또 무슨 글귀가 쓰여져 있는 게 아닌가. 편액을 주의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다. 하긴 그에 비하면 편액의 크기나 홍제루란 글씨는 얼마나 큰가.
 
얄궂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면서 뚫어져라 쳐다본다. 한반도 안에 들어앉은 글귀는 '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 글귀는 왜 한반도 그림 안에 들어앉아 있을까. 대체 한반도 그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한반도라는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일까. 상상력의 한 가지 표현방식인가.
 
그러나 절집에 들어선 예의도 있고 해서 의문은 의문대로 남겨두기로 한다. 하긴 용주사는 절 입구에서부터 선돌을 세우고 거기에 '到此門來 莫存知解'란 글귀를 새겨 이 문에 이르러서는 분별심을 내지 말라고 엄하게 질책하고 있지 않던가. 그래, 이러쿵저러쿵 의미를 채우지 말자. 그냥 '텅 빈' 기표로 남겨두자.
 
어쟀든 글귀와 한반도가 어우러진 이 기호는 은근히 홍제루라는 큰 글씨를 조롱하고 심지어는 공격하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홍제루라는 글씨는 그 크기만큼이나 세상의 중생을 널리 구제한다는 그 의미부터 먼저 밖으로 표출하는 힘이 있어, 이 기호는 그 의미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독살 같다. 말하자면 이 기호로 인해 홍제루라는 의미의 경계선에 숭숭 바람구멍이 난다고 할까.
 
아주 재미있다. 홍제루란 편액은 "해석을 자극하면서도 자유로운 해석을 통제하는 기표의 열린 논리"(움베르토 에코)가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흔히 화장실, 문, 벽, 다리 밑 등지에서 볼 수 있듯이 코드화된 기호들로 가득찬 도시에서 그것들을 혼란시키는 거리의 낙서들, 종종 내가 강렬한 '날것’의 느낌을 받는 그것들에 견줄 만하다. 굳이 견주자면 말이다.
 
더구나 서로 다른 두 기호가 한 공간 안에 함께 배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분열증적이며 따라서 놀라운 것이다. 이 사건을 겪은 소회를 밝혀보자.
 
'달다!’(田岡 大愚) 아니면 'Fuck you!’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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