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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거야!

벼리 | 기사입력 2005/04/15 [07:28]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거야!

벼리 | 입력 : 2005/04/15 [07:28]
▲ 용주사 회양목. 앙상한 몰골에 굵은 철사를 동여매고 사다리 모양의 목발을 짚고 선 모습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 2005 벼리

화성 용주사에 가시거든 대웅전 앞 축대 오른 쪽에 괴이하게 생긴 나무를 꼭 보세요. 영락없이 살이 다 썩고 남은 앙상한 해골 모양인데다가, 억지로 세워놓은 듯 제 체구보다 더 큰 목발에 의지하고 서 있는 회양목 말이지요.
 
용주사 창건 당시 정조가 심었다는 설화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나이도 2백 살은 족히 넘을 터이고, 그 체구도 그 나이에 걸맞게 마치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몰골 아니면 죽었다가 겨우겨우 살아난 몰골이랍니다.
 
그 앙상한 몰골은 때깔마저 산소 이장 때 누렇게 탈색된 뼈를 보는 것(회양목의 옛이름은 黃楊木, 나무가 누렇기 때문이지요)과 같습니다. 흔히 오래 묵은 것에서 느끼는 연륜이나 시간의 무게감이 아니라 입에 침이 타 들어갈 정도의 섬뜩함을 불러일으키지요.
 
게다가 그 앙상한 몰골에 굵은 철사를 동여매고 사다리 모양의 목발을 짚고 선 모습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에 딱 버티고 서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현실이 상상보다 더 상상적이라고 착각될 정도이지요. 그 흉직한 몰골을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훑어보노라면 마치 전도된 현실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합니다.
 
▲ 괴이한 모습 속에 삶과 죽음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나무가 아닐까.     © 2005 벼리

그래도 어른 두 키만한 키 끝에 매달린 두 개의 가녀린 가지들은 그 흉한 몰골의 체구와는 달리 분명 살아 있고 게다가 대웅전 처마와 허공을 짝하여 고졸한 멋도 풍깁니다. 역으로 생생하고 맛깔스러운 가지들 때문에 회양목은 수술까지 받아가며 그 흉한 몰골로 서 있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살아 있는 가지와 죽었다가 겨우겨우 살아난 듯한 몰골의 어긋남이 너무나 역력합니다. 그런데 이 어긋남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아주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잡하고 혼돈스런 심사에 빠지게도 됩니다.
 
회양목은 그 생김새가 사람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꽃도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가 고작 도장 새기는데나 쓰인다고 해서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절집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에 가장 이르게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고 해서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선자(禪子)의 모습으로 보지요. 황양목선(黃楊木禪)이란 말이 바로 그 소리랍니다.
 
그러나 용주사에서 만난 회양목은 그런 뜻 깊은 비유를 연상토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봐선 안될 것을 봤다는 괴이하고 섬뜩한 느낌을 받고, 또 이 느낌 한 켠에선 삶과 죽음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너무 무거운 느낌에 그 회양목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하고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눈길, 발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 코가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코 끝을 건드리는 미미한 정도인가 싶은데 이내 온몸을 맑게 하는 향기가 도량 가득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회양목 향기입니다. 대웅전 주변에 온통 회양목이 심어진 까닭에 회양목 향기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죠. 아마 다른 곳에선 거의 취하기 어려운, 그런 향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 회양목들은 피해버린 그 흉한 몰골의 회양목 자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때 어떤 외침이 귀에 들려옵니다. 그 외침은 피해버린 그 흉한 몰골의 회양목이 들려주는 소리입니다. 게다가 그 외침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제 손아래 벗의 목소리로 역력히 들려옵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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