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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또는 키치적인

벼리 | 기사입력 2005/04/19 [07:54]

슬픈 또는 키치적인

벼리 | 입력 : 2005/04/19 [07:54]

▲ 마을의 공장과 창고, 그리고 장승과 솟대. 광주 무갑리에서.     ©2005 벼리

장승이나 솟대는 마을의 수호신입니다. 이 수호신의 의미를 강하게 내비치기 위해 장승이나 솟대는 전통적으로 마을 입구에 자리잡습니다. 마을과 마을 아닌 곳의 경계를 표시하지요. 따라서 그 경계에서부터 마을 안쪽에는 그 어떤 사특한 것도, 마을이란 공동체를 파괴하는 그 어떤 것도 들어설 수 없겠지요.
 
그러나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속절없이 변하는 세상이 물론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장승과 솟대가 세워지는 마을에 덩치 큰 공장, 창고가 마구 들어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마을 안팎으로는 더 큰 공장과 창고를 들이기 위해 산을 무너뜨려 평지를 만드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한창입니다.
 
따지고보면 보다 싼 땅을 찾아나선 자본이 시골마을까지 파고들어 교환가치에 눈이 어두운 일부 탐욕스런 주민과 죽이 맞은 탓이겠지요. 여기에 눈치를 보던 법이나 행정이 공범자로 나선 탓도 더해질 수 있습니다.
 
본디 아늑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일그러진 그 풍광은 슬픔이 가득 밀려오는 낯설음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어느 옛사람의 심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삼십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사람은 죽고 집은 허물어지고 마을은 황폐해졌네
청산은 말이 없고 봄하늘 저무는데
두견새 긴 울음소리 아득히 들려오네.
 
三十年來返故鄕
人亡宅廢又村荒
靑山不語春天暮
杜宇一聲來杳茫
 
--淸虛堂, 還鄕

 
어찌 풍광만이겠습니까. 그 두드러진 우리 시대의 파괴, 탐욕의 기호들 뿐 아니라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마을사람들이 받고 있는 마음의 상처는 또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번잡한 도시를 피해 이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는 한 지인은 떠날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공장과 창고를 배경으로 서 있는 장승과 솟대는 끈끈하게 버티고 서 있음으로 해서 지독히 슬픈 기호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마치 키치(kitsch)가 되어 버려 우두커니 서 있는 듯도 합니다.
 
  • 高度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 어떤 사소한 즐거움
  • 조롱
  • 근조 서민경제
  • 봄날에
  • 성불사
  • 남한산에서
  • 紅一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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