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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긴장감 그리고 유쾌함

벼리 | 기사입력 2005/04/21 [23:54]

경계선, 긴장감 그리고 유쾌함

벼리 | 입력 : 2005/04/21 [23:54]

▲이 드로잉에 김을 선생은 “나는 항상 경계선 위에 서 있다. 경계선 위에는 피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어서 좋다.”라고 쓰고 있다. ‘KIM EULL DRAWINGS 2002-2004’중에서.     © 2005 벼리

몇 해 전, 내가 졸렬한 평문으로 폐를 끼친 바 있는 김을 선생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후원으로 드로잉집 ‘KIM EULL DRAWINGS 2002-2004’을 냈다. 틈틈이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앞으로도 틈틈이 보게 될 것 같다. 미학적 감상과 더불어 특히 실존적 감상이 주요한 독법이 되고 있어 드로잉집이라고 해도 그이의 드로잉 전시에서 실제 작품을 대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 그만큼 그이가 생생한 삶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별다른 구색없이 작업을 해온 탓이리라. 거기, 오늘 유달리 눈에 띄는 드로잉 작품이 있어 손가락 가는 대로 몇 마디 소회를 쳐낸다. 우선 우회로부터 밟자.
 
아웃사이더가 보기에 인사이더는? 낡았다. 진부한 느낌이 강할 것이다. 그럼 아웃사이더 자신은? 열의 아홉, 오늘의 아웃사이더는 내일 인사이더가 되어 있을 터이다. 청춘의 객기가 아니라면 아웃사이더는 인사이더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탓이다. 어제의 아웃사이더가 오늘 인사이더로 버젓이 자리잡는 일이 다반사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런 양상은 반드시 자연스럽지는 않다. 하긴 아웃사이더가 떠난 빈 자리는 누군가 다시 채울지도 모른다.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으로.
 
일부에선 아웃사이더를 끝없는 일탈로, 탈주로 이해하기도 한다. 90년대 이후 질 들뢰즈류의 사고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들은 제도화에 깊은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끝없이 탈주선을 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런 이들이 있다면 우선 경하를 드리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사상으로서, 성향으로서, 심지어는 유행으로서 그런 이들은 일부 있어도 일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그런 일탈의 영구귀환자는 보기도, 찾기도 힘들다. 그럼 묻자. 나(너)는 그런 기질이 있는가?
 
그럼 제 길로 들어서보자. 김을 선생의 드로잉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화폭에는 일정한 형태의 그림이 있고 그 위에 드로잉 한 줄이 좍 그어진 것은, 말하자면 고착성과 그것을 양분하는 어떤 몸짓의 은유가 아닐까. 게다가 그이의 문사적 기질의 발현일 수도 있고, 무려 세 해를 드로잉을 일삼아, 놀이삼아 온 터라 실존적 기질의 발현일 수도 있는 아포리아가 이 풀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항상 경계선 위에 서 있다. 경계선 위에는 피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어서 좋다.”
 
그럼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라는 양분은 하나의 도식이 아닐까. 도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의미를 얻지 못한다. 나와 너의 다름, 이것과 저것의 다름이 아니라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외줄타기와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한 줄 좍, 경계선 긋기, 그 시원한 몸짓이 아닐까. 그 때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는 아주 사소하고, 심지어 귀찮은 문제로 보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김을 선생의 좍 그어진 드로잉 한 줄에서 내가 생기발랄한 유쾌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소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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