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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반가사유상을 보다

벼리 | 기사입력 2005/05/02 [06:12]

얼굴없는 반가사유상을 보다

벼리 | 입력 : 2005/05/02 [06:12]
▲천오백년이 넘는 세월의 풍화를 겪었고 그리고 얼굴 없는 석조반가사유상.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햇골산 중턱 암벽에 새겨져 있다.     © 2005 벼리

언듯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지옥문>에 나오는 '생각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비록 도록으로밖에 보지 못했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직감적으로 몸짓과 그 몸짓에서 어떤 의미가 발생함을 알게 한다. 몸은 내적이고 사적인 것과 외적이고 공적인 것이 만나는 표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은 역사와 문화의 배경을 떠나서라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는 다른 문맥으로 읽혀진다. 한 다리는 무릎 위에 걸치고, 한 손은 가볍게 턱을 괴고, 반쯤 뜬 눈에 약간 앞으로 몸을 기울여, 좌대에 걸터앉아 고요히 사색하는 반가사유상은, 우선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 무렵 불교를 공유한 동양의 나라들에서 국제적인 조각양식이다. 한 시대의 보편성이란 문맥을 획득한 바 있다는 소리다.
 
또 그것은 "석가여래가 출가하기 전 아직도 왕자였던 시대의 모습을 연상한 것으로 인생의 번뇌 속에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젊은 석가의 자태를 표현한 것"(최순우)으로 볼 수도 있고, 다른 도상적 의미로 이른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란 붓다적 세계관을 표상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해석은 특히 반가사유상의 "기하학적 형태를 벗어난 자유로운 조상기법"(고유섭)과 관련해 보는 이로 하여금 철학적, 종교적인 측면에서 깊이 있는 의미의 새김 뿐 아니라 미적인 감흥에서도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 반가사유상은 자아 '이상'의 맥락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은 이 국제적인 조각양식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여기엔 기법적 우수성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평가도 곁들어져 있을 터이다. 그 현존의 사례들로는 우리나라 조각사에 최고 일품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나 일본 경도의 광륭사에 모셔져 있지만 실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것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제시되곤 한다.
 
그런데, 우연히도 얼굴없는 반가사유상을 산중에서 마주쳤다면, 그 기분은 어떠할까. 그림 그리는 이들과 남한강을 더듬어 올라가다가 우연히 중원의 한 깊은 산골에서 얼굴없는 반가사유상(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마애불상군의 하나)을 마주치자, 으슥한 산중의 암벽에 새겨져 있고 함께 있는 다른 형상의 마애불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심한 풍화를 겪은, 그 반가사유상을 마주치자 그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와 관련자료를 확인해보니 이 마애불들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무려 천오백년 정도나 장구한 시간의 힘을 받은 것이다. 한강유역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올해 3월에 문화재청이 국보로 지정했다).
 
동행한 한 작가의 말대로 비록 "정교한 조각도 아니고 암벽이 갈라지기도 하고 떨어져 나가기 쉬운 석재 위에 부조된 것이라 예술적으로는 다소 떨어진다"는 점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풍화의 흔적과 공존하는 반추상화된 그 반가사유상의 형태는, 그 심연의 얼굴의 부재로 인해 나를 섬뜩하게 했다.
 
우리가 얼굴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통해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기의 얼굴을 알게 되는 것인데, 내가 마주친 반가사유상은 결코 녹녹치 않는 어떤 표상인데다가 얼굴마저 지워져 버렸으니, 아니 또렷한 흔적을 남기면서 똑 떨어져 나갔으니, 그것은 영원히 자기의 얼굴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는, 자기가 자기를 보지 못한다는, 화살처럼 달려들어 꽂히는 어떤 기호다. 그러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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