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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 보문사에서

벼리 | 기사입력 2005/05/12 [08:21]

석모도 보문사에서

벼리 | 입력 : 2005/05/12 [08:21]

▲ 석모도 낙가산에 아로새겨진 관세음보살과 가지런히 매달린 등들이 굴참나무 가지 사이로 보인다. 마음에 아로새겨둬도 좋을 모습이다.     ©2005 벼리

낙가산 '관세음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관음기도를 마치고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오는 그녀(1)에게 말을 걸었다. 이마에 잔주름이 보이는 그녀는 가벼운 화장을 했다. 지명(知命)인가 싶다.
"거, 관세음보살님 코 보셨어요?"
"못봤는데요."
"그럼, 뭐 보셨어요?"
"관세음보살님."
"아, 관세음보살님을 보셨군요. 저는 코만 봤는데요."
"예?"
"관세음보살님을 우러러 보다가, 하도 코가 크시길래 코만 쳐다봤더니 나중엔 코만 보이시더라구요."
"아, 그러셨어요."
"근데요, 관세음보살님 코가 돼지코 같더라구요."
"예?"
"보살님께서 복스러운 코를 보이신 관세음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염(念)하셨으니, 좋은 일 많이 생기지 않겠어요?"
"무슨 불경스러운 말씀인가 했더니, 들어보니 그렇군요."
그녀가 두손모음을 하자 나도 질세라 두손모음으로 답례했다.
 
보문사 도량에서 다만 들은 것이다. 그녀(1)처럼 역시 열심히 관음기도를 마치고 내려온 또다른 그녀(2)가 스님에게 물었다. 컷트한 은빛의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녀는 족히 이순(耳順)을 넘겨 종심(從心)인가 싶다.
"스님, 염불과 송불이 어떻게 달라요?"
"입으로 하는 게 송불이고 마음으로 하는 게 염불이야."
"그럼, 염불은 어떻게 해요?"
"지극정성으로 송불하다보면 염불이 되고 염불이 끊어지면 송불이 되지. 그러니까  송불이 됐다 염불이 됐다 하는 것인데, 다만 가리지만 말고 지극정성으로 하면 부처님 돼."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어찌나 밝은 표정을 짓는지 깊게 패인 주름살이 얼굴에서 떨어져나와 날아오르는 듯했다. 그녀가 스님에게 두손모음으로 예를 드린다.
 
좋은 날이다. 낙가산 중턱 깍아지른 벼랑에 들어앉은 관세음보살도 만났고, 간절하게 염하는 아름다운 그녀들도 만났다.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는 것을 들으면서 좋은 인연도 지었다. 보문사(普門寺) 도량에서 아득하게 펼쳐진 서해를 바라본다. 섬들은 배처럼 떠다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막힐 게 없다. 
 
보(普)!
 
이것이 문(門)이다. 며칠 있으면 사월초파일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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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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