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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나부상

벼리 | 기사입력 2005/05/15 [17:18]

전등사 나부상

벼리 | 입력 : 2005/05/15 [17:18]

▲ 전등사 대웅보전 귀퉁이에서 무겁게 추녀를 받쳐들고 있는 나부상. 네 귀퉁이 모두 있다.     ©2005 벼리

그 유명한 전등사(傳燈寺)의 나부상(裸婦像)을 보았다. 등이 불가에선 부처의 깨달음이나 지혜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전등이란 그것이 끊이지 않고 전해짐을 뜻한다. 게다가 전등사는 그 옛날 바다 건너 송나라에서 가져온 대장경을 보관하던 곳이 아니던가. 그런 절집에 나부상이라니?! 이게 도대체 뭐 꼴리게 하는 짓이람!

예술사적으로 서양인이 고대로부터 사람의 몸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에 반해 동양은 대체로 꺼리는 경향이 있음은 주지하는 대로다. 그나마 표현하는 경우조차 서양처럼 사람 몸 자체의 ‘생기’보다는 그것과 대조되는 ‘숨결’이나 ‘초탈’의 이미지를 암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차이는 무엇보다도 유한한 삶과 그 몸을 바라보는 동서양간 철학적 견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서양은 인간형상 가운데에서도 특히 나부상을, 그것도 이모저모 세밀하게 표현하는데 집착해왔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부터 현대의 회화, 사진, 영화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경향이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알고 있듯이 요즘의 포르노는 볼 수 없었던 처녀의 성기조차 표본실의 개구리처럼 다 보여준다. 그것도 확대까지 해서 세세하게 보여준다. 다 보여주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이런 시각중심적 서양의 사고를 우리도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서양과는 확실히 다른 동양의 예술사적 전통에서, 그것도 성스러움의 임시존재나 그것에 참여하는 공간으로서의 절집에, 다름아닌 옛 절집에 나부상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파격이든 변칙이든, 놀라운 그 무엇이다. 강화사(江華史)나 그런대로 쓸 만한 문화유산 안내책자에 소개된 나부상에 얽힌 전설은 한결같이 그것이 분명한 나부상임을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광해군 당시 전등사가 불이 나서 전소되다시피 했는데 이 때 대웅전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아랫마을 주모와 정분이 났다.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주모는 도편수가 벌어 갖다준 돈을 챙겨 줄행랑을 놓았다. 도편수는 앙갚음의 마음으로 나부상을 만들어 대웅전 네 귀퉁이에서 추녀를 떠받치게 하였다.)

실제 이 나부상을 올려다보게 되면 우선 그 형상이 쪼그리고 앉아 일그러진 얼굴로 처마를 떠받치고 있어 어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린 인간의 형상이다. 더구나 몸 전체가 홍조 띤 살색을 하고 있다.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는 그 홍조의 살색을 더욱 강조해주는 듯하다. 여기에 홍조의 나체로 쪼그리고 앉은 형상은 잠재되어 있는 관음증을 자극할 만도 하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가도 누가 볼세라 자꾸만 훔쳐보듯 올려다보게끔 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로 인해 나부상으로 충분히 볼 만하다.

그래, 이 나부상은 절집에 어울리는 성상(聖像)이 아니라 정말 뭐 꼴리게 하는 속상(俗像)이다. 그것이 서구적 미감의 나부상을 보는 것과 다르고 또 포르노를 보는 것과도 같을 수 없겠지만, 주어진 공간이 수행의 도량이고 더구나 자리잡은 전각이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대웅전에 이름마저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한 점을 감안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 같은 속물은 그렇다고 치고 눈 푸른 납자도 자칫 심한 눈병이 나서 전전긍긍할 만한 나부상이다.

그래서다. 이 나부상 조성에 관계된 이가 전설에 나오는 도편수든 아니면 그 도편수를 수용했을 당시의 스님이든, 누구든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나부상을 조성했을고? 이 질문을 던질 때, 나는 마치 ‘세계 속에 내던져진(하이데거)’ 듯한 그런 하잘것없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나 답해줄 사람이 어디 있을고! 설령 전설이 아닌 사실적인 기록이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어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사실이 아니라 오로지 해석만이 있을 뿐이므로.

약산 스님(藥山 惟儼 : 745-828)이 경(經)을 보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평소에 경을 보지 말라고 하시더니 어째서 몸소 경을 보십니까?”
약산 스님이 말했다.
“나는 눈을 달래주고 있을 뿐이야.”
또 물었다.
“제가 스님처럼 경을 보아도 되겠습니까?”
약산 스님이 말했다.
“네가 만약 나처럼 경을 보면 쇠가죽도 뚫어지고 말거야.”
(祖堂集, 권4)

왜, 나부상을 조성했을고? '나는 눈을 달래주고 있을 뿐이야'? 그럼, 나부상을 올려다볼까? 눈병 나지! 자꾸 올려다보면 아주 심하게 눈병 나고말고! 그럼 아예 올려다보지 말까? 아니, 이 좋은 나부상을 왜 올려다보지 않을고! 누가 말했던고? 약이 독이고 독이 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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