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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포스터

벼리 | 기사입력 2006/07/24 [05:03]

어떤 영화포스터

벼리 | 입력 : 2006/07/24 [05:03]
▲ 영화 비열한 거리의 메인 포스터. http://www.dirtycarnival.co.kr     ©성남투데이

영화포스터를 보자마자 ‘띵!’했다. 띵은 ‘찡’보다 한 수 위. 그만큼 강렬한 이미지로 몸을 때렸다. 왜 그랬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강렬함은 영화포스터에 뭐라고뭐라고 쓰여진 문구들, 그것이 큰 글씨의 영화제목이든 작은 글씨의 카피든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포스터의 글씨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시의 푸른 어스름 또는 밤을 배경으로 청년은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반쯤 타들어간 한 가치 담배가 끼인 그 손은 핏빛으로 물든 붕대가 감겨져 있다. 그런 손이 몇 번 눈물을 훔치고 지나갔을 그 얼굴은 찌그린 이맛살, 짧은 머리카락으로 드라마틱한 표정이다. 고개를 약간 숙였다고도 할 수 있고 약간 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표정 한복판에는 뻥 뚫린 구멍 하나가 있다. 그 구멍은 나를 빨아들인다. 청년은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 청년이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영화와 현실, 세대를 가로질러, 마치 그 청년이 나인 듯 내가 그 청년인 듯 순식간에.

그 나이쯤 내가 그랬듯이 그 청년은 무엇인가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 꿈을 향한 뜨거운 열정의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 꿈이 무엇인지, 그 몸부림이 어땠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인생이란 너와 나 다른 것, 다른 길을 걷는 법이므로. 중요한 것은 누구나 꿈을 꾸고 몸부림을 친다는 것이다. 젊음이란 바로 그런 기호. 그것은 ‘자유’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인생은 자유다.

영화와 현실, 세대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다가온 청년은, 나를 띵하게 때린 그 청년의 강렬한 이미지는 자유를 숨기고 있다. 숨기는 방식으로, 역설적으로 그것이 자유임을 강렬하게 노출하고 있다. 그 청년이 어떤 꿈을 꾸었든, 어떤 몸부림을 쳤든 내게 순식간에 강렬하게 달려든 것, 그 청년처럼 누구나 꿈을 꾸고 몸부림쳤을 자유,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자유는 좌절되었다. 좌절된 자유. 그것이 현실임을, 냉혹한 현실임을 청년의 드라마틱한 표정, 몸짓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나이쯤 내가 그랬듯이 청년은 그 드라마틱한 표정, 몸짓을 통해 감당하기 힘든 실의와 낙담의 순간, 그 극의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개같은 내 인생!) 아울러 청년은 그 드라마틱한 표정, 몸짓을 통해 자유를 좌절시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자유의 대척점에 있는 현실에 대한 욕설 그 자체다. (엿같은 세상!)

청년의 강렬한 이미지는 인생의 본질인 자유와 그 대척점에 있는 반자유의 현실, 이 양자의 동시적 재현이다. 그러므로 그 이미지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다. 경험적인 판단에서 그 이미지는 누구나, 아마 예외없이 누구나 맛보았을 삶의 고통을 연상시킨다. 내게 강렬하게 달려든 청년의 이미지는 고통의 기호(sign)다. 적어도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절명의 그 기호.

그러나 청년의 기호는 고통의 기호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이미지는 어떤 실마리를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은 왜 눈물을 훔치고 있을까? 왜 다른 어떤 의미의 도출도 용인하지 않는 좌절 그 자체일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옷자락이 휘날리며 우뚝 선 모습일까? 왜 그는 눈물을 훔치며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의 대적이다. 바로 이것, 이 무겁고도 진지한 대적의 기호는 우리 삶의 현실이 비극이지만 그것과의 대적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창조한다는 강력한 암시를 준다. 그것은 무엇일까? 좌절 아니 좌절의 연속일지라도 삶을 물러나지 않게 하는 것,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 어쩌면 비극 속에 단련된 보다 강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내일 당장 죽는 일이 있더라도.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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