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얼굴

벼리 | 기사입력 2006/08/04 [01:23]

얼굴

벼리 | 입력 : 2006/08/04 [01:23]
▲ 나의 얼굴은 나의 실현을 향한 나의 얼굴이며 동시에 서로 비비며 살아야 하는 나의 얼굴이자 너의 얼굴이다.     © 성남투데이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로 산다고 들었다. 거꾸로 나이 마흔에 이르기까지는 지행(知行)의 미숙함이나 오류, 윤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함이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렇다면 자기 얼굴을 갖게 되는 나이 마흔에 이르기까지는 부지런히 배우고, 시행착오 곧 ‘벽’을 향해 돌진하고 부딪쳐 나동그라져도 보고, 과연 자신이 삶의 진실함에 다가서고 있는지 성찰의 시간도 가져볼 필요가 있겠다. 이미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긴 터라 이런 얘기도 해봄직하다.

나이 마흔이 자기 얼굴을 갖는 절대적인 기준은 물론 아니다. 의미를 생각하는 삶이란 관점에선 물리적인 나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긴 삶의 깨달음이란 늘 ‘때 아니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며, 사람의 사회성은 곧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므로 나이 마흔이란 기준이 꼭 상대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최소한 이 기준은 보편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어도 상식적이고 경험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있겠다.

아무튼 나이 마흔에 갖게 되는 자기 얼굴이 있다면, 그 얼굴은 자기를 표상하는 어떤 것이리라. 사람과의 교류에서 상대의 나이, 성, 성격, 분위기, 지성을 보곤 하는데 이런 것들은 어떻게든 얼굴에 배이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얼굴은 사람의 본질적인 어떤 것이며, 그것이 드러나는 표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얼굴이란 표면은 상대를 알거나 판단하는 하나의 그림이며, 사람의 얼굴은 똑같은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그 그림은 유일한 그림인 셈이다.

얼굴에 눈, 입, 귀, 코, 혀가 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들 감각기관은 각각 보기, 말하기, 듣기, 냄새맡기, 맛보기와 같은 감각작용을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연에서 문화로 옮겨갈 수 있다. 얼굴에 모여 있는 이들 감각기관과 감각작용에 의해 인간이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설 아닌 역설인 셈이다. 그 만큼 인간에게서 얼굴은 인간의 전부에 버금간다.

고루한 사람들은 윤리의 관점을 ‘당위’로, 그 기준을 해라 마라 식의 ‘율법’의 문제로 간주하지만 살아 있는 삶을 통해 윤리를 익힌 사람들은 그 관점을 ‘존재’로, 그 기준을 공존의 문제 곧 ‘서로 어울려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간주한다. 이른바 ‘타자의 철학’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강조한 레비나스는 이런 관점에 있다. 바로 이런 윤리의 아이콘으로서 얼굴에 대해 레비나스가 하는 말이다.

“얼굴은 무방비 상태로 똑바로 드러나 있다. 얼굴의 피부는 가장 벌거벗은 부분이며 또한 가장 빈곤한 부분이다. 남 보기 흉하지는 않지만 가장 벌거벗은 것이다. 또한 가장 빈곤하기도 하다. 얼굴에는 본질적으로 빈곤함이 존재한다. 그 빈곤의 증거는 포즈를 취하고 표정을 지으면서 이를 가리려는 데에서 나타난다. 얼굴은 마치 우리에게 폭력행위를 권장하듯이 노출되고 위협당한다. 동시에 얼굴은 우리에게 죽이는 것을 금지한다.”

나는 나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너는 나의 얼굴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내 얼굴은 바로 너를 향해 가는 나의 통로다. 너를 찾고 발견하는 유일한 다리이다. 이 점에서 자기 얼굴, 내 얼굴이란 실은 너의 얼굴이다. 너의 얼굴이 나의 얼굴인 것이다. 레비나스가 묘사한 것처럼 그 다리는 빈곤하며 벌거벗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에서 파괴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것이 얼굴이다.

나의 얼굴은 나의 실현을 향한 나의 얼굴이며 동시에 서로 비비며 살아야 하는 나의 얼굴이자 너의 얼굴이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삶을 생각한다.
 
  • 高度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 어떤 사소한 즐거움
  • 조롱
  • 근조 서민경제
  • 봄날에
  • 성불사
  • 남한산에서
  • 紅一點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