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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미장원

벼리 | 기사입력 2006/08/12 [03:10]

영자 미장원

벼리 | 입력 : 2006/08/12 [03:10]
▲ 셋트가 아니다. 군산시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영자 미장원’이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로 은유된 70년대와 그 이래로 버텨온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매우 강렬한 시간문화의 사례로 볼 수 있다.     © 2006 벼리

영자 미장원. 이 미장원을 보는 순간, 뇌리에 떠오른 것은 ‘영자의 전성시대’였다. 시간은 어느 새 70년대로 거슬러갔다. 그 때는 내가 한창 바람(?) 피우던 시절. 당시 나는 내 또래의 아이들보다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죄로 그 값을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미당, 자화상)이라고 미당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바람난 수캐마냥 세상을 정처없이 쏘다니고 있었다.

동행한 디자인평론가 최범 선생이 무척 감동을 받은 눈치다. 줄곧 서울에서 도시인으로 살아온 터라 뜻밖의 풍경으로 그이의 걸음과 시선은 그 미장원에 고정되고 있었다. “작품이야!” 그이의 말이다. 예술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삶, 그 문화의 맥락에서 하는 말임을 알아차린다. 이런 맥락에서는 미장원의 간판이며 형상을 단지 민초들의 삶에 스며든 키치로 보는 것은 미흡하다. 주름진 켜가 쌓인 시간의 문화, 그것도 삶의 맥락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는 시간의 문화라는 인식이 보태져야 하는 것이다.

삶 속에서 흐르고 있는 시간의 문화는 묘한 데가 있다. 그것은 단지 사료적 의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료가 그렇듯이 영자 미장원은 단지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하는 관조의 대상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눈앞에 나타나 있지만 사라짐을 통해 나타남을 부정하는 나타남의 타자(他者)다. 이런 의미에서는 영자 미장원은 사료가 아니며 현존(現存)도 아니다. 그것은 흔적이다. 현재이면서 과거이고, 과거이면서 현재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다 흔적일 테지만, 영자 미장원은 생생한 흔적이다. 누가 이 가치를 살에 새겨둘 수 있을까.

민초들의 삶 속에서 살아남아 불현듯 마주치게 되는 강렬한 흔적은 힘을 느낀다. 거기엔 진한 민초의 삶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힘은 동시에 끝없이 보다 빠른 속도전을 펼치는 자본의 폭력성 앞에서 늘 초췌해진다. 그 힘을 쇠잔케 하고 급기야는 빼앗고 무(無)로 파괴하는 것이다. 하긴 영자 미장원이 있는 곳은 쇠락한 부둣가 마을이다.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이 부둣가 마을, 이 곳에 둥지를 튼 영자 미장원은 영락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영자 미장원을 바라보면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 高度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 어떤 사소한 즐거움
  • 조롱
  • 근조 서민경제
  • 봄날에
  • 성불사
  • 남한산에서
  • 紅一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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