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天長地久

벼리 | 기사입력 2006/10/16 [00:17]

天長地久

벼리 | 입력 : 2006/10/16 [00:17]
▲ 양지파출소가 있는 어린이놀이터 담벼락을 따라 가을꽃들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마을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 2006 벼리

동네 파출소를 끼고 있는 어린이놀이터라면 삐딱한 애들이 못된 짓이나 하는 으슥한 곳으로 이용되지는 않으리라. 어른들도 어린것들이 그 놀이터에 나가 놀겠다고 해도 마음을 내려놓으리라. 양지파출소를 끼고 있는 어린이놀이터가 그런 놀이터다.

이 어린이놀이터 담벼락을 따라 뱀처럼 길게 늘어진 화단이 있다. 시멘트 벽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보기에도 조야하다. 하지만 더러는 심어져 있고 더러는 화분에 올려진 가을꽃들이 한창이라 넉넉한 골목길과 잘 어울린다. 볼 때마다 주민들이 만들고 가꾸었다는 의미에서 주민화단이라는 이름이 연상되곤 한다.

동네 파출소, 파출소를 낀 어린이놀이터, 어린이놀이터 담벼락을 따라 가늘고 긴 주민화단,  넉넉한 골목길. 이 모두가 한 데 어울려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 눈에 펼쳐지는 이 풍경은 처음 이 동네에 이사를 온 내게 고향에 돌아온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말 그대로 고향(故鄕)이란 연고 있는 시골만은 아니다. 나처럼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동네 친구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며 놀던 서울 신당동 골목길은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으로 나부끼는 영원한 고향으로 남아 있다.

장소로서의 고향은 시골도 있고 도시도 있지만 장소의 기억으로서의 고향은 시골이냐 도시냐가 있을 수 없다. 고향이란 그곳이 어디든 과거를 더듬는 기억 속에서 비로소 고향으로 다가온다. 새로 둥지를 튼 양지동에서 만난 골목길 풍경에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이와 유사한 길을 고향으로 가진 탓이다.

언젠가 수몰지역이 고향인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성묘하러 나서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고향이 수몰되고 고작 수몰되지 않은 산자락에 남은 조상의 묘를 성묘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러나 더 이상 나는 고향을 찾지 않는다. 대규모 재개발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생각 하나가 번뜩인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개발을 명분으로 도시를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벌써 도시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선 세상의 변화를 고려한다고 해도 고향의 느낌을 주는 도시를 유지하거나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할 경우 그런 도시를 가꾸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의식이야말로 도시를 보는 안목에서나 실제 도시에 공간적 변화를 주기 위해 손을 대는 일에서나 중요시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실제적인 이유에서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이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폭넓게 공유되어야 하리라. 하늘과 땅이 끝이 없다는 이 말은 시간의 지속과 더불어 공간의 지속을 함께 아우르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 노자가 오늘의 우리에게 새겨들으라고 전한 것이다.

어릴 적 서울 신당동 골목길을 고향으로 간직하고 있듯이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 골목길을 이 동네의 어린것들도 고향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일까. 주민화단에서 피어난 가을꽃들은 저마다 뽐내는 색색(色色)이자 내게는 고향에 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색(一色)이기도 하다. 색색이 일색인 그런 풍경.
 
  • 高度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 어떤 사소한 즐거움
  • 조롱
  • 근조 서민경제
  • 봄날에
  • 성불사
  • 남한산에서
  • 紅一點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