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오(留春塢)’
남산 아래 유춘오 멤버는 공조판서를 지낸 70대의 노인(김용겸)과 신분이 비천했던 사람(악사 김억), 40대 전후의 북학파(박지원, 이덕무, 안원섭) 등이었다. 이들은 거문고와 가야금, 양금(철현금), 퉁소, 심지어는 쟁반을 악기 삼아 화음에 몰두했다. 즉흥적으로 노랫말을 만들어 삽입하기도 했고, 흥에 겨운 나머지 체면을 잊은 채 웃통을 벗어던지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청계천 수표교까지 우르르 몰려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날도 있었다. 이들의 난장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연장자 김용겸의 행동에서 엿볼 수 있다. 흥에 겨운 나머지 음악을 들려준 30년 가까이 나이차가 나는 후배들과 신분이 낮은 악사들에게 넙죽 절을 한 것이다. 신분제가 견고했던 당시 이런 행동은 쉽지 않은 파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홍대용을 비롯한 북학파들이 혁신적인 정책을 일관되게 부르짖었던 원동력이 유춘오에 있었는지 모른다. 늘 공기처럼 가까이한 음악 속에서 홍대용과 벗들은 시대의 촉수에 가닿았는지 모른다. 이완이 없는 긴장은 부러지기 쉬운 까닭이다. 긴장은 아무래도 창조와 거리가 멀 것이다. ○…“특별히 남긴 게 없는 시장 되고파… 무리한 업적보다 변화 지향” 최근 취임 100일을 맞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화일보와 한 인터뷰 제목이다. 순간 아, 이 말을 이재명 성남시장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지방정부 수장이나 대통령은 빠름보다는 느림에 천착해야한다고 믿는다. 지도자는 업적보다는 가치에 중점을 둬야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을 때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났다. 언론에서 앞 다투어 호들갑을 떨기에 청계천에 가보았다. 보자마자 내 첫 반응은 ‘지랄허네!,였다. 그것은 복원공사가 아니라 시멘트 투성이의 분수대를 수직으로 길게 늘어뜨린 것과 다름없었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청계천 복원공사를 한 이유는 명백할 것이다. 그러나 업적은 정반대인 과오가 돼서 두고두고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닐 게 뻔하다. 지도자의 빠름으로서의 업적은 필경 가치와 거리가 멀다. 당연히 과정이 간단하게 생략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업적은 훈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재명 시장도 ‘업적’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우고 빈둥빈둥 놀았으면 한다. 홍대용과 그 일당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흐드러지게 놀았듯이. 그 속에서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깊은 속내를 들으면서 더디더라도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게 업적 아닐까?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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