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삶을 내던졌을 때 떠오른 건 아기장수 설화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조선후기 거듭된 민중봉기 실패 등을 함축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설화 말고는 그의 죽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널리 알고 있다시피 아기장수 설화는 아주 비극적이다. 어느 날 평민의 가정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그러나 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날아다닌다. 부모는 힘이 센 아기장수가 장차 크면 역적이 되어 집안을 망칠 것으로 크게 걱정을 한 나머지 그를 돌로 눌러서 죽이고 만다. 뒤늦게 아기장수의 실체를 알고 들이 닥친 관군이 그의 무덤에 이르자 유언에 따라 함께 묻어 준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어 막 일어서려고 한다. 아기장수는 다시 한 번 관군에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 조선시대 중후기를 살다간 민중들의 처지가 읽힌다. 팍팍한 현실을 깨뜨려 줄 영웅이 필요하나 그 영웅의 등장은 오히려 세상을 소용돌이치게 만들어서 화를 입히고 만다. 그렇다고 현실을 마냥 수긍하고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어쨌거나 영웅이 등장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이런 처지를 담은 아기장수 설화가 잔인하면서 비극적인 건 당연한지 모른다. 이거, 영웅을 죽여, 살려?! 고단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아기장수와 유사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를 아기장수 부모처럼 거리낌 없이 죽인 건 아니었을까? 아기장수 부모가 사내아이를 물리적으로 죽인 것이나 현 시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노무현을 죽인 것은 같은 의미일 터이다. 관군이 아기장수를 죽인 것이나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을 죽인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나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사람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집단적으로 울며불며 슬퍼하고 있었을 때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들을 보았다. 대체 그것들은 누구의 품 안으로 날아들었을까? ○…민주통합당 임종석 총장이 공천권을 반납하는 한편 총장직도 사퇴했다. 나는 그가 보다 빨리 결단을 내리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를 위시한 지지자들인 486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술 더 떠 이미 공천을 받은, 임 총장과 엇비슷한 혐의가 있거나 드러난 486과 그 윗세대 운동권은 요지부동이다. 공천 정국 속에서 별꼴이 다반사지만 운동 세대들의 모습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진보적 가치와 도덕성을 마치 전매특허라도 낸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정작 시대적 가치는 읽혀지지 않는다. 수평적 리더십과 공감 대신 끼리끼리 헤게머니가 그들의 최대 목적인 것 같다. 그들 486은 한낱 기성세대일 것이다. 그래서 화려했던 과거를 훈장처럼 요란스럽게 홍보하는 걸 보면 딱하기조차 하다. 자신의 미진한 스토리로는 도저히 나설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입증해 보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더욱 권력에, 기성 가치에 집착하는 것일 게다. 거기엔 물론 탐욕과 경쟁주의와 몰염치가 자리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미덕이 있을 리 없다. 아닌 걸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비판하는 정신은 오간데 없다. 성남 지역 역시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486이 중심인 특정 정파의 무한탐욕은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태다. 이른바 먹거리가 되는 지역의 조그마한 단체 모두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가? 아기장수는 없다. 원칙이라면 낭떠러지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무현도 없다. 그래, 분명한 건 이제 마흔 잔,치,도 끝,났,다.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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