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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신】“1천 억 원이 시 한 줄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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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신】“1천 억 원이 시 한 줄보다 못하다”

물상화의 인간관계 속에서 읽는 아아, 백석의 시!

이삼경 | 기사입력 2011/07/03 [06:38]

【마이신】“1천 억 원이 시 한 줄보다 못하다”

물상화의 인간관계 속에서 읽는 아아, 백석의 시!

이삼경 | 입력 : 2011/07/03 [06:38]
▲ 백석 전집.     © 성남투데이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누군가 그리워지는 날이면 이 시 구절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리움은 더욱 사무친다. 백석의 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처음 접한 건 대학시절 술집에서였다. 술집 벽에다 누군가가 낙서처럼 휘갈겨 놓았었다.
 
읽자마자 술이 확 깼다. 글이 앞뒤가 맞지 않아서였다. 눈이 내려서 사랑하는 연인이 더욱 보고 싶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문장인데 이 시는 거꾸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눈이 내렸다니!
 
물론 시라는 양식은 ‘나는 너를 매우 사랑해!’ 식의 평면적 언어 나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석의 이 시는 그런 교양 정도는 간단하게 비웃고도 남았다. 술이 깨면서 시에서 사랑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도대체 연인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저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마침 그때 나의 연애가 삐걱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골똘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술이 깨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없어진, 고려원 출판사에서 나온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문고판 시집을 샀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당시 쓴 표현 그대로 표기했음)
 
마저 시를 읽고 나자 짐작이 갔다. 백석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인과 헤어졌고 그것을 잊지 못해 무척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 백석의 서정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집 곳곳에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지식인이 무엇을 고통스러워했는지도 아프게 다가왔다.
 
자꾸만 파괴되는 공동체적 삶, 전통적 풍습, 언어…. 사랑하는 연인은 실체적 여성일 수도 있고 붕괴돼 가는 아름다운 조선의 풍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그게 뭐 대수인가, 내 입맛에 맞게 시를 즐기면 그만인 것을.’ 하고 헤어진 나의 그녀가 그리울 때마다 끌어다 읽곤 했다.

그러다 한참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궁금했던 백석의 그 연인이 나타났다. 자야(본명 김영한, 기명 김진향). 식민지 시대로 인해 기생이 되었던 엘리트 여성 자야는 고급 요정인 서울 성북동의 대원각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 1995)을 통해 둘의 사랑을 기술해 놓았다.
 
식민지 시절 함흥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백석과 요리집에서 웃음을 팔고 있었던 자야는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서울로 진출한 자야를 잊지 못해 사직서를 내던지고 한걸음에 달려온다. 둘은 자야의 하숙방에서 3년여 동안 동거를 한다. 그러나 봉건적 잔재가 많았던 시절이기에 둘의 사랑은 이것으로 끝이 난다.

백석은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시골의 한 여인과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백석은 봉건적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야에게 만주로 함께 도망치자고 제안을 한다. 그러나 자야는 백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두려워 이를 거절한다. 백석 혼자 만주로 떠나게 되고 이후 둘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빼어난 서정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석만 자야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야도 그에 못지않게 백석을 그리워했다. 한 인터뷰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 사람(백석)을 언제 많이 생각했나?(기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자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기자) 1,000 억 원이 그 사람 시 한줄 보다 못해.(자야)”
 
해마다 백석 생일날에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자야. 그녀는 북한에서 살았던 백석을 평생 그리워하다 지난 99년 눈을 감았다.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자야는 당시 싯가로 1,000 억 원대의 대원각을 아무 조건 없이 지난해 입적하신 법정스님에게 시주했다. 유명한 도량 길상사가 바로 그 자야의 대원각이다.
 
누군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 백석의 시를 읽는다. 번민에 휩싸여 있는 날도 백석의 시를 읽는다. 시나, 잘 빚은 술이나, 차나 모두 그리움이 사무치거나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가만히 영혼 안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사람 만나는 게 겁이 날 때가 많다. 가까운 사람이든,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든 만나면 우리를 지배하는 게 인간적인 정, 의리, 사고의 동일함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걸 확연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엘리트든, 좌파든, 우파든, 노동자든 상관없이 인간관계의 물화라는 거미줄 속에 우리가 엮여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이 때문인지 타자와의 소통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속으로 단정 지을 때가 많다. 소통, 공감 모두 나만의 일방적 생각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할 때도 숱하다. 그런 속에서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위대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형식적인,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마지못해 그런 척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백석의 시나, 백석과 자야의 사랑은 이처럼 인간관계의 물상화에 지쳐 있을 때 더듬게 되는 그 무엇이다. 나의 영혼, 언제나 파르르 떠는 사막 위 먼지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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