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해 더 무엇을 말하랴. 끝나기가 무섭게 오리 CGV 영화관 바로 아래 층에 있는 영풍문고로 달려갔다. 그러고 보면 이 서점은 위치선정(?)이 참 탁월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허전하거나 분노할 때 그것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들어가서 책이든 뭐든 충동구매를 하기 때문일 게다. 나는 무작정 음악 시디코너로 가서 몇 해 전에 나온 한 대수의 「욕망」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만을 담은 3장짜리 시디를 샀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서 차례로 음악을 들었다. 한대수의 욕망은 절규 그 자체였다. 울부짖음이 가슴 속으로 콕콕 비집고 들어와 박혔다. 현대문명을 비판한 영국 뮤지션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듣는 감동 이상이었다. 훨씬 차분하고 드라이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도 다른 의미로 빨려 들어왔다. 현악기인 바이올린은 마음을 너무 들뜨게 하는데 반해 첼로는 너무 차분하게 하는 것 같다. 반면 피아노는 이 중간 지점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서 좋다. 물론 곡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써니는 아주 부정적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아야 하는 걸까? 여고생 조폭의 일반화와 아줌마들의 후배 조폭에 대한 폭력적 응징, 격렬했던 데모 현장에서 여고생 조폭의 난투극, 우두머리가 죽으면서 동료들에게 거액의 유산을 나눠주는 설정 모두 억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스토리도, 영상미도 없는 거친 써니는 몇 가지 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제를 써먹었을까? 기업 사장이 된 여고생 조폭이 암에 걸려 죽으면서 거액의 돈을 거침없이 동료들에게 나눠주는 반물질적 설정을 했을까? 어떻게 보면 바로 이 점이 써니가 지금 대중들에게 먹히는 코드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엉성한 영화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듯하다. 그 코드는 정확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대중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한다. 출구가 없기에 과거를 아름답게 보고 싶어 하고, 물질주의와 무한 경쟁주의에 찌들어 살다보니 물질에 대한 낭만주의가 가슴 한 구석에서 꿈틀대고…. 그런데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삽질’하기에 바쁘다. 삽질을 통해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고 그것으로 대다수 대중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급급한 것이다. 토건족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접수한지 오래라지만 아직도 여야 구별없이 경쟁적으로 삽질 경쟁을 하는 걸 보면 한꺼번에 그들이 퇴출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삽질 정치인들이여, 엉성한 영화 써니라도 한 번 보시기를!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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