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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신】 서민이 서민을 괴롭히는 분당

승차거부 택시들을 보며…견디기 힘든 수평적 폭력

이삼경 | 기사입력 2011/05/13 [00:52]

【마이신】 서민이 서민을 괴롭히는 분당

승차거부 택시들을 보며…견디기 힘든 수평적 폭력

이삼경 | 입력 : 2011/05/13 [00:52]
○…얼마 전 서현역 인근에서 후배와 함께 술을 마셨다. 최근 출간된 <북유럽 디자인>에 대해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그만 자정을 넘기고 말았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후배 집에 가서 한 잔 더하기로 했다. 성남택시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옛 <오즈오즈 나이트 클럽> 앞에서 궁내동요! 하고 택시 문을 열어젖힌 순간 운전기사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쳐야 했다.

▲ 북유럽 디자인의 특성에 대해 사진을 곁들여 콤팩트하게 보여주고 있는 <북유럽 디자인>. 이 책은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모든 생활용품에 실용성, 미적 단순성 등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무계급성도 있다고 말한다. 김수영 시 전집..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먹물들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다.     © 성남투데이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궁내동은 안가요 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고지로 들어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택시도, 그 다음 택시도 모두 궁내동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택시기사들의 단호한 승차거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이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야하나, 아니면 웃돈 주겠다고 해서 일단 타고 봐야 하나…. 우리는 얼떨결에 후자를 선택했다. 우리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택시를 타고나서였다.

“형, 대한민국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직업이 뭔 줄 아세요?”
“ … ”
“바로 서민이라는 직업입니다. 누구에게 가장 스트레스 받는 줄 아세요? 바로 서민입니다. 서민이 서민을 날마다 들들 볶습니다. 제가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는 오로지 이 때문이라니까요!”

후배의 말은 단순히 택시 운전기사에게 당한 분풀이성이 아니었다. 후배는 똑같은 처지인 서민들이 서민들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라고 진단했다.

“정규직 서민이 비정규직 서민을 얼마나 괴롭히는 줄 아세요? 회사에서 내쫓아 내려고 안달합니다. 직업 세습화는 그 정점이에요. 정규직 서민들의 노조간부들이 비정규직 서민들에게 돈을 받아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을 보면 정말 서민이 무섭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곧잘 버스 타고 나 다니는데 난폭운전 때문에 매번 스트레스 많이 받아.”
“그건 약과예요. 저는 날마다 저와 처지가 엇비슷한 서민들에게 위협 받으면서 살아간다니까요!”

서민들이 서민들을 괴롭히는 세상이라는 우리의 결론에 더욱 확신을 하게 된 것은 궁내동에 도착했을 때 택시 운전기사가 당연하다는 듯이 웃돈을 받아 유유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나를 바라보며 내뱉었다.

“봤지요? 저 독한 서민!”

○…누가 민중이 민중을 괴롭히는 걸 두고 수평적 폭력이라고 했지? 아마 알제리 민족해방을 이끌었던 의사출신의 프란츠 파농일 것이다. 분명 수평적 폭력은 수직적 폭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민중들끼리 싸우도록 하는 거대한 배경. 닭장 같은 조그마한 틀에다 민중을 가둬두고 죽지 않도록 약간의 모이만 던져주는 거대한 음모. 이러한 수직적 폭력 속에서 닭장 안에 갇힌 민중들은 서로의 깃털들을 물어뜯으며 살아가겠지.

우리도 그날 한점의 오차 없이 닭장 속에서 사정없이 다른 닭들을 물어뜯었다.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닭장 속에 사는 먹물들에게 딱 맞는 시일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정말 얼만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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