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작고한 박경리 선생이 최고 수준의 내공을 지닌 소설가라는 사실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다. <토지>를 나남출판사에서 21권짜리로 내놓은 시점이다. 읽기 쉽게 편집된 이 토지 전집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탄성을 내질렀는지 모른다.
조정래, 황석영 선생의 소설에서 보게 되는 화끈한 묘사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소설에서 보게 되는 지적인 묘사도 없다. 이들의 소설과 비교한다면 <토지>는 초라한지도 모른다. 너무나 쉬운 묘사들로 가득 차있는 것이다. 그러나 읽을수록 빠져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잊고 있는, 뻔한 인간들의 내면을 새삼스럽게 빈틈없이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발가 벗겨져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얼마나 소스라쳤는지 모른다. ‘시대의 증언록’이라는 한마디로 간단하게 <토지>를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박경리 선생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점으로 ‘몰염치’를 일관되게 역설한 것은 그래서 설득력을 지닌다. 사람들의 내면을 잔인하리만치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전쟁과 폭력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근원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몰염치, 후안무치는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인문학적 단어임에 틀림없다. ○…인간을 이런 저런 범주에다 집어넣으려는 시도는 인류사가 존재하는 한 끊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시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상식이 아닐까 한다. 그 상식에서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몰염치, 후안무치다. 지금 지역도 정치의 계절을 눈앞에 두고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그 열풍의 내용물은 아무리 둘러보고 자세히 들여 봐도 후안무치다. 과거가 의심스러운, 아니 시정잡배 보다 더한 행위를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현혹하고 다닌다. 어디서 무얼 하면서 지냈는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이 때가 되자 나타나서 지역 운운하며 사탕발림을 한다. 지역은 중앙의 속국인양 큰 정치인을 몰고 다니면서 힘을 과시하는 철없는 사람도 있다. 다시 한번 탄핵돌이를 부르짖는 가여운 사람들도 물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중앙 정치무대가 재판을 짜야할 처지에 놓이면서 급속도로 정치지형이 변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인 상황이다. 후안무치한 정치열풍의 주역들을 제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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