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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딸, 박근혜

〔벼리의 돋보기〕군사쿠데타가 구국혁명?

벼리 | 기사입력 2007/07/19 [21:27]

그 아버지에 그 딸, 박근혜

〔벼리의 돋보기〕군사쿠데타가 구국혁명?

벼리 | 입력 : 2007/07/19 [21:27]
▲ 5·16군사쿠데타가 구국혁명이었다는 망발을 들려주는 박근혜는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사진출처; 민중의소리)     © 성남투데이
19일 공중파를 탄 이명박·박근혜 후보 검증청문회는 진짜 웃기지도 않는 수준 미달의 한편의 ‘정치개그쇼’. 하긴 이미 하루 전날 안강민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 위원장이 한나라당 차원의 후보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토하기도 했다. 얼마나 후보들이 검증을 꺼려했으면. 안 위원장의 실토는 검증실패 선언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검증청문회는 출발부터 부실 나아가 면죄부 청문회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예상대로 각종 중요한 의혹들에 대한 해명 같지 않은 해명들 따라서 부인성 발언이 두 후보로부터 줄기차게 쏟아져 나왔다. 이 같은 부인성 발언은 검증청문회가 공중파를 탔다는 점과 관련해 이·박 두 후보가 유권자들을 상대로 ‘면죄부 청문회’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더욱 깊게 했다. 검증청문회는 면죄부 청문회 의심만 불러일으킨 게 아니다. 방어를 넘어 적극적인 자기 정당화 발언들도 나왔기 때문이다.

검증용 질문 자체를 모략 개념으로 사용된 네거티브로 몰아 “이런 네거티브는 한국 정치사에 없었다”고 흥분하는 이명박. 여전히 속 시원한 해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명박의 이런 태도는 유권자 입장에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기정당화의 압권을 보여주는 발언은 생물학적 남성성을 상징이라도 하듯 저돌적인 인상을 주는 이명박이 아니었다. 생물학적 여성성을 십분 활용, 유권자들을 접근하고 있는 박근혜로부터 나왔다.

5·16군사쿠데타가 ‘구국혁명’이었다는 발언이 바로 그것. 학문적인 의미에서나 현실적인 의미에서나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간주하는 경우는 없다. 박근혜가 이를 몰라서 한 발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5·16군사쿠데타를 미화하는 발언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녀의 발언은 정확히 아버지 박정희의 말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을 때 이 말을 사용한 바 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정권 찬탈에 성공한 5·16군사쿠데타에 이르기까지 이미 여러 차례 군사쿠데타를 모의하고 또 모의했던 박정희. 유신을 통해 종신대통령을 꿈꾸었던 박정희. 내부 권력투쟁을 불러일으켜 끝내 부하 총탄을 맞고 비명에 간 박정희. 박정희의 이런 드라마틱한 모습은 그가 ‘권력의 화신’이었음을,  군사쿠데타와 유신이라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생의 마감 순간까지 권력욕을 집요하게 추구했던 희대의 권력자였음을 입증한다.

이런 박정희가 생전에 “역사는 항상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다른 시대, 다른 상황에서 그의 딸 박근혜가 대권에 도전하는 지금,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진리 명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진리란 그토록 확신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이 왜 생겨났는지를 진지하게 묻는데 있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말은 ‘탈역사주의’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탈역사주의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다.

그러나 탈역사주의는 역사관이 없다는 말과 같지는 않다. 니체는 역사에 대한 세 가지 잘못된 관점을 말한다. 과거의 영광이 다시 한 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태도-기념비적 역사관, 골동품 애호가처럼 과거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태도-골동품적 역사관, 과거를 파괴하고 해체하려는 태도-심판자적 역사관. 이런 분류에 따르면 박정희의 탈역사주의는 기념비적 역사관에 가깝다.

기념비적 역사관은 영광(누구를 위한?)의 과거를 재현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차이들, 소중한 차이들이 몰살당하고 만다. 이런 역사관을 가진 통치자가 등장할 경우 영웅(?)을 위해 수많은 민초들의 삶은 위기에 처한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신념으로 받아들인 수많은 지식인들, 학생들이 박정희를 위해 희생당했다. 정권과 국가를 구분하지 않는 가국(家國)적 통치로 삶을 고단한 노동과 굴종으로 굴절당하고 자유로운 시민적 사유를 키우지 못한 민초들 역시 박정희를 위한 희생자들이었다.

왜곡되지 않은 역사관은 중요하다.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게 없다. 그런 역사관은 그것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준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역사를 소환하고 그 역사에 물음을 던지고, 이런 소환과 물음의 진지한 과정을 통해 왜곡되지 않은 역사관을 키워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적어도 그런 역사관은 법고창신(法古創新)한다. 이런 이유에서 5·16군사쿠데타가 구국혁명이었다는 박근혜는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역사관이 잘못되었다.

분명히 말한다. 5·16군사쿠데타는 구국혁명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권력욕에 불타는 군인들의 무력을 앞세운 불법적인 정권 찬탈이다. 정치에 중립을 지켜야 할 군인들의 가장 적나라한 정치 개입이다. 오로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국방의 의무만을 지닌 군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배신이다. 정권이 나라를 운용하는 핵심도구라는 점에서는 나라의 기강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린 둘도 없는 반역행위이다.

5·16군사쿠데타는 구국혁명이 결코 아니다. 5·16군사쿠데타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전 육군참모총장 이종찬의 말은 핵심을 찌른다. “군 최후의 목표는 폭력으로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군이 정치에 개입할 때 반대세력을 섬멸하려는 충동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치에 개입한 군인에게 자제해야 할 최후의 선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시대는 폭압과 폭정의 시대 그 자체였다.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원조 박정희를 비롯해 박정희 시대의 자식들인 전두환, 노태우 시대로까지 이어진 군사쿠데타, 군사쿠데타에 의한 오랜 군부독재체제는 다시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시대일 뿐이다. 전두환은 사라졌는데 왜 박정희는 사라지지 않는가. 자식은 이미 사라졌는데 왜 아버지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5·16군사쿠데타는 구국혁명이 결코 아니다.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구국혁명이 인정받는 것은 오직 민초들이 나설 때뿐이다. 정권을 통해 민초들의 보다 나은 삶의 개선이 이루어지 않을 때, 정권 찬탈이 아닌 보다 나은 삶의 개선을 위해 삶의 사회적 조건들을 뜯어고치기 위해 민초들이 나설 때만이 구국혁명이다. 민중혁명만이 구국혁명이다. 누가 감히 국방의 의무를 저버리고 군사깡패들이 불법적인 정권 찬탈에 나선 군사쿠데타를 구국혁명이라 망발하는가. 박정희와 박근혜. 똑같다.

2007년 7월 19일. 1961년 5월 16일에 일어난 5·16군사쿠데타가 구국혁명이었다는 망발을 들려주는 박근혜는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1961년 5월 16일과 2007년 7월 19일은 결코 같지 않다. 이 두 시점의 차이는 결코 깎이고 휘어질 수 없는 수많은 차이들, 소중한 차이들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차이들은 더 크고 더 의미 있는 차이들로 분화 중이다. 군사독재를 무너뜨린 민주주의의 성과이다. 역사는 결코 되풀이하지 않는다. 박근혜의 시계바늘만 왜 여전히 1961년 5월 16일에 멈춰 있는가.

박근혜는 왜 아버지를 밟고 서지 못하는가. 박근혜가 아버지를 옹호하는 한, 박근혜는 ‘반역자의 딸’,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그녀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은 아이러니한 역사의 반복이다. 적어도 대통령후보라면 우리 앞에 ‘아버지’ 운운하며 아버지의 말을 되풀이하는 딸로 서선 안 된다. 우리가 요구하는 여성 대통령후보는 군사쿠데타의 주역, 정치군인으로서의 박정희를 비판하며 아버지를 뛰어넘는 용기있고 지혜있는 딸이다.

우리는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보다 나은 미래의 비전을 들려주는 여성 대통령후보를 만날 수 있을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박근혜를 보면서 늘 지울 수 없는 질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아니라면 그녀는 누구일까. 여성들은 물론 수많은 남성들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여성 대통령후보, 아니 여성 대통령은 우리 시대에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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