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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개 나름이다

〔문화/하다말다〕기자·언론, 이대로 좋은가

벼리 | 기사입력 2006/07/09 [23:49]

개도 개 나름이다

〔문화/하다말다〕기자·언론, 이대로 좋은가

벼리 | 입력 : 2006/07/09 [23:49]
기자(記者)는 남이 말한 것을 그대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기사(記士)가 할 일이다. 기자는 기자지 기사가 아니다. 요즘 인기직종이 속기사란다. 남이 말한 것을 그대로 퍼 나르는 것을 일삼는 기자라면, 게다가 요즘 세상은 속도전을 펴는 세상인지라 기자 노릇 그만두고 전직훈련을 통해 어디 지방의회 속기사로 전직하면 딱이다. 왜 기자가 남의 말을 그대로 퍼 날라서는 안 된다는 걸까. 뉴스는 태생적으로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뉴스는 결코 공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의도, 계산의 코드 속에 배치되지 않는 사회적 발언이 있음을 난 알지 못하다.

▲ 기자로 호명된다고 기자가 아니다. 기자로서 하는 일이 기자답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양심적인 독자들, 냉철하게 상황을 관찰하는 독자들은 기자를 평가한다. 등급을 매기고, 진짜와 사이비를 가려낸다. 뉴스도 그렇다. 진짜 뉴스인지, 의사뉴스(pseudo-event)인지 가려낸다.  사진은 기자들이 출립하고 있는 성남시청 브리핑룸.     ©성남투데이

기사가 아닌 기자가 남의 말을 그대로 퍼 나르는 것은 결국 기자가 ‘개’라는 얘기다. 그 개는 물론 고분고분한 개다. 그 고분고분한 개는 개줄(?)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기사가 기사 노릇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자가 기사 노릇하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자가 고분고분한 개 노릇한다는 것은 기자가 전하는 뉴스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분고분한 개 같은 기자는 뉴스를 전하기에 앞서 그 뉴스거리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 방식으로 공정하지 않은 뉴스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주로 강자가 제공하는 뉴스거리-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따라서 공정하지 않은 뉴스가치-를 매개할 때 써먹는다. 고전적인 수법이랄까. 그대로 퍼 날라야만 강자의 뉴스거리를 온전하게 보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들었다가는 고분고분한 개 노릇은 그만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분고분해야 밥줄이 끊어질 염려가 없는 것이다. 이 경우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강자의 고분고분한 개 길들이기가 아니라 알아서 고분고분한 개 노릇하는 기자의 ‘길들여지기’가 문제다. 직접적인 지배에서 간접적인 지배로? 수많은 기사, 뉴스들을 보라. 8할 정도가 그렇다.

이슈를 다룰 때 쓰는 수법도 문제 삼아야 한다. 사회적 갈등이 없을 수 없고 갈등이 제도로 수용되는 사회가 민주주의사회이기 때문이다. 뉴스는 종종 이슈다. 문제는 이슈가 담론적인 논쟁, 입장상의 찬반을 반드시 동반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슈가 아니다. 이 점에서 이슈야말로 뉴스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기자가 한 쪽의 말만을 그대로 퍼 나르는 방식으로 뉴스의 불공정함을 은폐시킨다. 그러나 이슈에서는 그렇게 했다가는 불공정함이 폭로되므로 다른 방식을 도입한다. 왜? 사기를 치기 위해서다. 보는 눈이 안 되서 그렇게 하는 기자도 물론 있다. 순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순진함조차 공모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고전적인 수법이 양시론 또는 양비론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이비’ 양시론, 사이비 양비론이다. 냉철한 분석에 기초한 양비론, 양시론과는 전혀 질이 다르다. 사이비와 진짜가 같을 수 없다. 그렇다. 기자들이 이슈를 다룰 때 쓰는 양비론, 양시론은 9할이 사이비다. 가짜다. 그만큼 사이비 양시론, 사이비 양비론을 상투적으로 써먹는다는 얘기다. 기자가, 언론이 다루는 이슈를 독자들은 냉철하게 봐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그렇듯이 냉철하게 보지 않고는 사기 당하고 만다. 신문에 났으니까? 아니다. 왜 신문에 났는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냉철하게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최근 시의회의 의장단 배문문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역의 이슈로 등장했다는 얘기다. 성남투데이는 지방자치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의 변화 특히 정당공천제 실시와 교섭단체 등장에 담긴 책임정치의 뜻을 염두에 두면서 이 이슈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미 한나라당측의 의장단 싹쓸이 주장이 억지임을 분명히 했다. 논리적으로, 논증적으로 정견(正見)이 아닌 사견(邪見)임을 분명히 했다.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힘을 확대하려는 정치적 욕망을 위장, 은폐하려 들기 때문에 억지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억지는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지방자치의 위기를 불러들이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언론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으르렁 컹! 고분고분한 개가 아닌 사회감시견 말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이 문제를 상투적으로 접근, 이슈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밥그릇 싸움 때문에 개원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겉보기로는 양쪽을 다 때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의도하든 안 하든 억지 부리는 한나라당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강자에게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지 않는가. 이 같은 판단은 겉보기가 아니라 속보기를 통해서다. 밥그릇 싸움이라니? 지역정치, 의회 운영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 지방자치의 위기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어찌 밥그릇 싸움인가! 이렇게 비틀어댈 수 있다는 사실에 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금쪽같은 경구도 있다.

왜곡된 전제를 통해 의회 개원을 촉구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논증’의 측면에서 틀린 것이다. 논리와 논증은 다르다. 논리는 형식상의 모순만 따지지만 논증은 형식상의 모순만을 따지지 않는다. ‘주장’의 근거가 옳으냐 틀리냐까지 따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인 탓이다. 요즘 애들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 논술시험을 치른다. 그 논술이 바로 ‘논증’이다. 어린것들 보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전제로서 담아내야 할 내용을 비틀고 이 왜곡된 전제에 따라 형식적인 결론을 내리는 유치한 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논술 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대학 입학? 어림없는 소리다.

기자로 호명된다고 기자가 아니다. 기자로서 하는 일이 기자답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양심적인 독자들, 냉철하게 상황을 관찰하는 독자들은 기자를 평가한다. 등급을 매기고, 진짜와 사이비를 가려낸다. 뉴스도 그렇다. 진짜 뉴스인지, 의사뉴스(pseudo-event)인지 가려낸다. 기자의 문제의식, 뉴스의 설정방식을 따져보고 맞아 떨어지는 문제의식, 설정방식인지 이에 따라 기자의 대응과 가치판단은 정확한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요컨대 말이 아니라 말의 근거를 따져 말이 맞는지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다. 이른바 ‘인식의 지도 그리기’를 통해 기자, 뉴스 나아가 언론을 평가하는 것이다.

깨인 독자들은 언론으로부터 무엇을 알고 싶은가. ‘그것’이 알고 싶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언론은 ‘다른 것’을 줄창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대개는 딴 생각을 품은 탓이지만 순진해서 그런 경우도 없지 않다. 뿐만 아니다. 깨인 독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무엇이든지 기(其)인 것은 기다, 아닌 것 아니다라고 말하는 명철한 언론을 원한다. 특히 억지를 부리는 강자에 강한 언론을 원한다. 사이비 양비론, 사이비 양시론을 들고 나와 물타기를 하고 결국 강자의 편을 드는 고분고분한 개 같은 언론은 원치 않는다. 독자들은 예리한 사회감시견의 역할을 하는 언론을 원한다.

깨인 독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언론은 맞아야 단련되기 때문이다. 냉철함을 비난만 한다고 비틀고 진지함을 현학적이라고 폄하하는 사이비 독자는 가라. 사이비 독자, 그는 사이비 언론과 공모자다. 기자와 언론, 아직은 많이 잘못되었다. 나-벼리도 아직은 많이 잘못되었다.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 잘못되었음, 부족함을 한시도 잊은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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