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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온 봄, 가까이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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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온 봄, 가까이 두다

〔문화/하다말다〕난초와 바람꽃

벼리 | 기사입력 2007/02/24 [04:18]

가까이 온 봄, 가까이 두다

〔문화/하다말다〕난초와 바람꽃

벼리 | 입력 : 2007/02/24 [04:18]
▲ 일품이라 할 만한 난이 있는가 하면 하품인 사람도 있을 테고….     © 벼리 2007

조선의 선비들이 공부의 이상으로 삼은 것은 격물치지(格物致知) 곧 관념이 아니라 실재에 이르러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자연 그 공부법은 근사(近思)였으니 높고 먼 이상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몸 가까운 곳, 그곳에 있는 존재를 놓치지 않고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격물치지와 근사의 주된 통로로 삼은 것은 다름아닌 주변에서 볼 수 있거나 이를 좀더 가까이 두고자 애써 심고 가꾸던 나무나 풀이었다. 조선의 선비화가 강희안(1417-1464)은 자신이 애써 심고 가꾸던 나무나 풀의 양생법을 기록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각각 이 이치를 탐구하여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 그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이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뜻을 잃어버림이 있겠습니까.”

조선의 선비들이 나무나 풀을 찾고 또 그것들을 대하는 자세는 말하자면 실천적인 수양의 문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와 같은 심성의 훈련을 넘어 형신(形神)·기(氣)·상(象)·의상(意象)·의경(意境)·품(品)·락(樂)·유(游)·적(適)·허실(虛實)·화(化)와 같은 미학적 가치들을 추구하는 심미적인 태도가 곁들여지곤 했다.

이 같은 격물치지적 자세가 회화로 나타나고 또 회화적으로 집약된 것이 사군자 그리기다. 조선의 선비들이 사군자를 즐겨 그린 것은 그것이 평소 붓글씨를 쓰던 운필(運筆)의 연장선에 있으며 이른바 ‘군자’로 요약되는 사군자의 의인적 가치들인 인·의·예·지에 마음을 실었기 때문이다.

선비들의 계급적 몰락으로 사군자를 그리던 전통은 오늘날 망실되고 말았다. 오늘날 일부에서 그려지는 사군자는 모방이거나 버리지 못한 습관적인 그 무엇이거나 단순히 장식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삶과 삶이 수양이던 문맥에서 이루어지던 전통의 사군자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게다가 모든 문화의 양식들은 시간의 켜가 두툼해지고 주름질수록 제도화, 양식화, 박제화 되고 개체적으로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지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 위험에 대한 깊은 자각과 반성이 동반자적으로 개입되지 않는 한, 문화는 끝내 그 위험한 길을 걷는 끝에 자멸하고 마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그린 사군자에는 그런 위험이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사군자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나무나 풀을 대하는 태도에도 따라서 그들의 격물치지적 이상이나 근사의 접근태도에도 그런 위험이 있었다.

물론 조선의 선비들이 나무나 풀을 대하던 태도는 진실함이 있어서 요즘 부자들의 그것에 견줄 바가 아니다. 요즘 부자들은 그들의 계급을 미화하고 장식하기 위해 나무나 풀을 대한다. 그들은 키치적이다. 이 경우 나무나 풀은 이미 나무, 풀이 아니다. 나무나 풀이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상당수의 사람들 사이에는 최소한 나무나 풀을 대하는 태도가 그 자체나 그 자체와 인간의 관계를 모색하는 수준이 아니라 알리바이이거나 하찮게 대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곤 한다. 인사 때 무슨 뜻을 실었는지도 모를 만큼 난이나 분재를 쉽게 주고 받거나 집안의 화초들을 무관심으로 방치하다가 열에 아홉 죽이고 마는 풍토가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환경이나 자연, 생태를 둘러싼 현재의 담론을 비출 경우 그것은 한 마디로 서구적인 인간중심주의적 시각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요컨대 허구다. 나무나 풀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거나 불가적인 태도에서 잘 드러나듯 인간과의 연기적인 관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옛 선비들처럼 정신적 표상으로 관계맺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본디 인간을 위해 쓰임이나 죽임을 당하는 존재가 따로 어디 있으며, 본디 인간보다 하찮은 존재가 따로 어디 있겠는가. 그런 것은 단 하나도, 어디에도 없다. 모든 존재는 상보적이며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적인 관점에서 볼 경우 어떠한 존재도 타자의 불행을 전제하지 않는 것이 없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뚜렷한 변화는 차이 나는 다양한 것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문명사적인 혼합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나는 내 삶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이런 변화에 종종 당혹스러움도 겪을 만큼 늘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 점에서 기다 아니다 할 흑백과 시비의 논리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논리들은 대개 이념적인 수준에 있고, 이런 이념적인 수준에서 흑백과 시비의 논리를 구사하는 자들을 나는 사람 같지 않게 여긴다. 그들은 체험적이지 않다.
 
이런 시대사적 특이성을 자각할 경우,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했던 격물치지의 이상이나 근사의 공부법은 하나의 옛 전통적인 수양으로 인정하는 한편 그것을 우리 시대의 문맥으로 끌어들여 달리 수용할 수 있다. 

▲ 수 센티미터로 몸을 낮추지 않고는 바람꽃은 결코 볼 수가 없다.     © 벼리 2007

전통을 좋아한다. 근대라는 교육과 사회환경에서 자란 나는 그것을 지금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잊혀진 것, 버려야 할 것으로 또는 시대의 문맥을 떠나 그대로 따라야 할 것으로 교육받았지만 완강히 거부해온 쪽에 속한다. 결코 잊거나 버리거나 또는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전통에서 발견할 수 없고 피하지 않고 생각해봐야 하는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내 몸에 새겨져 있거나 잔재된 근대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탈근대적으로 격물치지와 근사를 넘어선 그 무엇을 추구해온 것 같다.

조선의 선비들이 취한 나무나 풀에 대한 태도, 그들이 사군자를 그리던 태도를 양식화 이전 단계에서 받아들이면서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그들이 파악하지 못한 우리 시대의 특이성인 다양성과 혼합성의 가치에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늘 내 삶 곁에는 근대의 삶에서 놓친 자연, 물과 바람과 볕과 그늘을 불러들이는 난이나 매화, 동백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선비들이 미처 보지 못했거나 주목받지 못한 우리 산야의 나무나 풀이 있다. 그런 류의 그림이나 사진을 좋아하고, 자연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삶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루종일 풀을 근사했다. 오전에는 사람됨의 자질과 인격을 품평하는 옛사람들의 분품론(分品論)을 빌어 가히 그 문질(文質)이 일품(一品)이라 할 난초를 마주하다가 오후에는 그 내실은 취하지 않는 폼생폼사의 세상살이를 벗어나 산골짝에 들어 바람꽃을 마주했다. 어느 경우든 근사하지 않고는 구할 수 없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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