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구체 그리고 섬세의 정신

〔문화/하다말다〕성남에서 언론이란?

벼리 | 기사입력 2006/08/19 [16:41]

구체 그리고 섬세의 정신

〔문화/하다말다〕성남에서 언론이란?

벼리 | 입력 : 2006/08/19 [16:41]

마르크스의 욕구이론은 ‘생산의 욕구’이론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생산이 욕구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욕구가 생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욕구이론의 시사점은 인간의 필요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니라 ‘생산의 의도’에 따라 인위적으로 생산되는 ‘유도된 욕구’가 실재한다는 것이다. 유도된 욕구란 진짜욕구가 아니라 ‘사이비욕구’라는 뜻이다.

이 같은 내용의 마르크스의 욕구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문화 현상을 파악할 때 쓸모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현상은 자연스러운 욕구에 의존하기보다는 유도된 욕구에 의존하는 성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상류층이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가세하고 있는 이른바 명품신드롬은 이런 맥락에서 잘 읽혀진다.
 
▲ 이 잔디밭은 푸른가, 푸르스름한가.     © 성남투데이

마르크스의 욕구이론을 차용해 언론이 설정하는 아젠다도 비쳐볼 수 있다. 언론에서 설정하는 아젠다가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일반시민들의 진짜욕구를 겨냥한 아젠다인지 아니면 언론이 사이비욕구를 조작하기 위해 어떤 자의적인 의도 아래 설정한 아젠다인지 꼼꼼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곧 언론에서 설정한 아젠다가 일반시민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사이비아젠다가 아닌지 가려볼 필요가 있다.

전국언론은 이념적 차원에서 유도된 욕구를 생산하기 위한 사이비아젠다를 제출해 사회적 문제의 직시와 해결을 외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방언론 역시 지자체를 끼고돌며 이런 아젠다를 제출해 지역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거나 그 해결을 도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풀뿌리언론이라 말해지는 지역언론도 지방언론의 이런 행태를 종종 답습하곤 한다. 성남에서 지방언론 및 지역언론 상황은? 판단은 건강한 시민들에게 돌린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최근 재선 성공으로 기고만장해진 이대엽 시장은 시청사 내 브리핑 룸을 폐쇄한 바 있다. 이 점에서 명색이 성남시장이라는 그의 언론관은 더 이상 비판조차 필요 없다고 말하면 딱이다. 브리핑 룸 폐쇄에 기가 막혔던 한 기자가 참다못해 며칠 전 이대엽 시장을 만나 따졌다. 그의 얘기가 놀랍다. 이 시장이 일부 지방지 기자들이 브리핑 룸 폐쇄를 건의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여주며 브리핑 룸 폐쇄의 정당성을 말하더란다. 절망적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아젠다 문제뿐인가. 아젠다를 다루는 그 방법 역시 그렇다. 언론에서 뚜렷하게 발견되는 한 가지 경향은 그 아젠다를 다루는 적절한 방법이 아닌데도 거침없이 쓴다는 점이다. 말도 상황에 맞게 해야 하는 것처럼, 아젠다 접근방법은 그 아젠다의 성격과 맥락에 따라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다. 가령 문화적인 맥락에 놓인 아젠다를 환경적인 맥락으로 파악하면 어떻게 될까. 범주를 혼동하면 안 되듯 맥락을 혼동하면 안된다. 요컨대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젠다를 다루는 데서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한 가지 유의미한 근거가 포착된다. 그것은 ‘언론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다. 언론을 둘러싸고 고착화된 어떤 관념이 기자들이나 시민사회에 널리 유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관념이란 다양한 판단의 담론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판단의 담론들을 단일한 담론으로 통합하려는 관념이다. 유난히 언론에 대한 정치적 규제와 탄압이 심했던 시절의 경험과 시민사회의 정신적 빈곤에서 오는 폐단이다. 사상사적으로는 상당 기간 시대를 풍미한 거시담론의 영향에서 그만큼 벗어나지 못한 탓도 있다.

언론행위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가치와 의미의 다양성, 다중성이 전면화된 요즘과 같은 시절에는 특히 그렇다. 언론행위에서 핵심인 비판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비판(criticism)이란  ‘분석하고 음미한다’는 뜻이다. 고대 희랍의 ‘나누고 헤아린다’는 뜻의 크리노(krino)라는 말에서 유래된 까닭이다. 그러므로 해석으로서 어떤 유의미한 비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구체의 정신, 그 과정에서 문제의 결들을 살피는 섬세의 정신은 필수적이다.

내가 말한 구체의 정신, 섬세의 정신에서 성남투데이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 부자유는 종종 내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도 자유롭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론행위 수행에서 내가 끊임없는 모험과 반성을 망각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
 
  • 권력적 횡포 그리고 일상파시즘
  • 무관심의 글쓰기
  • 가까이 온 봄, 가까이 두다
  • 이것은 은행나무 화분이 아니다
  • 늙지 않는 이 소녀를 보라!
  • 구체 그리고 섬세의 정신
  • 똥과 된장, 그리고 수호천사
  • 바라본다
  • 어른부터 반성해라
  • 영어마을·특목고를 생각한다
  • 아무래도 포기해야…
  • 당신은 지금 어느 계절인가?
  • 자기만의 명품
  • “금연하는 이대엽 시장은 멋져!”
  • 성공할 수 있을까? ‘바르게 살자’
  • 그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다
  • 말할 수 있는 것, ‘섹스’
  • 원수를 사랑하라!?
  • 개도 개 나름이다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