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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명품

〔문화/하다말다〕명품이란 무엇인가?

벼리 | 기사입력 2006/08/08 [23:38]

자기만의 명품

〔문화/하다말다〕명품이란 무엇인가?

벼리 | 입력 : 2006/08/08 [23:38]
▲ 국산·중국산 부품으로 국내에서 만든 시계를 유럽의 왕족들만 차는 명품 시계라고 속여 강남의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에게 최고 9750만원까지 받고 팔아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서울경찰청 외사과가 압수한 가짜명품 시계들.     © 성남투데이
8일 가짜명품 사기사건이 주요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사기꾼들이 국산·중국산 부품으로 국내에서 만든 시계를 유럽 왕족들만 차는 명품으로 속여 강남의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에게 최고 9750만원까지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어떤 언론은 ‘명품에 미친 사회’라고 흥분했다. 이른바 대서특필이다.

이에 언론은 사기꾼들이 취한 부당이득의 크기, 이들의 사기수법에 이어 주요고객인 강남의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의 허영심을 꼬집었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의 분석은 늘 그래 왔다는 점에서 나쁘게 말하면 상투적이고 좋게 말하면 변화하는 시대상황 특히 문화상황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바닥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조로하는 흥분이 아닐까 싶다.

대체 인간의 허영심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던가. 인간이 어떻게 빵만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이는 가난한 자도, 부자도 마찬가지다. 부자야 마땅히 허영심을 사치로 드러낼 만하다. 그래야 하다못해 가난한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법. 가난한 자도 이따금 옹색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현실을 뚫고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허영심이 나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안 그런가.

세상은 생산만 있는 게 아니다. 소비도 있다. 소비에도 생산적 소비가 있고 낭비적 소비가 있다. 전자는 기본적인 의식주 활동처럼 생명의 보존과 개인들의 생산활동 지속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라는 점에서 결국 생산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후자는 사치, 상례, 제의, 기념비 건립, 유희, 구경거리, 예술 등 그 자체가 목적없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생산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현대의 문화적 상황이란 생산적 소비와 낭비적 소비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진다는 데 있다. 핵심적인 이유는 역사의 도착지로서 보드리야르식의 소비사회론에는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총체적으로 소비가 증가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유도하는 것은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생산상황의 변화에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일상생활의 미화가 일반화된 상황과 궤를 같이 한다. 일상생활과 대중사회의 의미가 시대의 특징으로 부각된 현대에는 예술이 더 이상 기득권을 주장하기 힘들다. 벤야민의 주장대로 기술적인 복제능력의 개발로 예술에서 느끼는 아우라(신비한 거리감)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쉽게 허용되는 전시가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감상의 대상이 되는 ‘관조의 미’에서 만지고 갖고 놀 수 있는 ‘소유의 미’로 곧 일상생활의 미화로 옮겨왔다는 얘기다. 여기에 자본주의가 가세한다. 아니 자본주의가 의도적으로 유도한다. 상품의 생산전략이 소유의 미를 기본으로, 상품의 ‘기능+α’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는 자본주의는 생산의 문화화 곧 문화산업화로 그 생산양식을 바꾸었다고 볼 수 있다.

상품의 기능만을 추구하는 상품은 시장에서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 ‘기능+α’를 염두에 둔 상품이라고 해도 소비자로부터 싸구려 티가 난다, 후졌다, 꾸질꾸질하다와 같은 평가를 받는 순간, 시장에서 그냥 퇴출이다. 바로 일상생활의 미화 때문이다. 소유의 미를 구현한 상품에 대해서 고전적인 예술의 미를 염두에 두고 쉽게 저질이나 저급을 운운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자본주의의 생산상황, 문화상황은 양면이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과거 상류사회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확산되어 일반 대중에게 향유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고 충분히 그런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살림살이가 즐기면서 살 정도라면 명품을 소비하되 나름대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명소비의 양식과 정신적 품위가 있으면 되겠다. 가난한 자도 가끔은 사치를 부려도 좋다.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명품도 구입해볼 만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의 문화적 상황이 자본주의의 상품 생산전략에 놀아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사람의 욕구가 자연스러움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자꾸 옮겨간다는 점이다. 이 같은 유도된 욕구의 생산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적인 의미의 ‘구별짓기’를 조장하고 정치적으로는 섞이지 않으려는 엘리트주의를 심어주기 쉽다. 사이비욕구를 일으켜 신드롬을 가져오기도 한다. 가짜명품 사기사건은 이런 맥락에 있다.

선택의 몫은 무엇보다도 나에게 달려 있다. 이는 사회적 해결 운운하는 자들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할 수만 있다면 자기만의 명품을 개발하라고 권하고 싶다. 상품 개발의 의미가 아니다. 독특한 자기만의 미적 취향에 따라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 명품은 흔히 알고 있듯이 전통있는 해외 유명브랜드 상품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미적 취향에 따라 포착되고 발견되고 소유되는 물건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서울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나 인사동 길거리에서 작은 크기의 인형들을 이따금 구입해 왔다. 마음에 드는 얼굴 표정이나 독특한 자세가 선택의 포인트다. 이따금 구입한 것이라 몇 개 되지도 않는다.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다가 이따금 그 인형들을 본다. 마주치는 그 때, 뜻밖의 상상으로 빠져들곤 한다. 이 명품들은, 명품이랄 것도 없지만 내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들이다.

내 방식은 나의 스타일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자본주의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개인적’ 실천에 대해서 과소평가하지 말기를 바란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가짜명품 사기사건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세상의 명암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또한 그 한복판에 있는 인간에 대해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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