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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부터 반성해라

〔문화/하다말다〕 청소년 국가관 바로세우기?

벼리 | 기사입력 2006/08/15 [01:13]

어른부터 반성해라

〔문화/하다말다〕 청소년 국가관 바로세우기?

벼리 | 입력 : 2006/08/15 [01:13]

8·15를 앞두고 주요 언론들은 애꿎은 한국 청소년들을 잡기 위해 나선 것 같다. 한국 청소년개발원, 중국 청년정치학원 청소년정책연구소, 일본 쇼케이대학원대학이 공동으로 실시한 3개국 청소년 의식조사 결과를 임의 추출해, 한국 청소년들은 전쟁 발발 시 앞장서서 싸우기보다 요리조리 눈치를 보거나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나가버리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한 것이다. 부모세대를 실망스럽게 하고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전하고 있다. 요컨대 언론들은 거룩한(?) 8·15에 즈음해 한국 청소년들의 국가관 바로세우기 이슈화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청소년의 41.1%가 전쟁이 일어난다면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답한 반면 중국청소년은 14.4%, 한국은 10.2%에 머무름”, “중국청소년의 60%는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 반면 한국은 37.7%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일본은 21.5%가 그렇다고 응답”, “한국 청소년의 63.5%는 한중일 중심의 아시아 국가연합결성 구성에 찬성의견을 보였고 중국은 53.1%, 일본은 44.5%로 나타남”

이는 정부연구기관인 청소년개발원이 낸 보도자료의 내용이다. 언론들은 이 같은 내용을 그대로 나발을 불었다. 조심하시라! 3개국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전체에서 임의 추출된 이 보도자료의 내용은 국가주의라는 정치이데올로기를 메시지로 삼고 있다! 참여정부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를 통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밝힌 것(《희망한국을 향한 성찰의 기록》)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조사결과 전체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보도자료 내용은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의도로 조사설계를 했느냐까지는 굳이 따지지 않는다 해도, 조사결과들은 한국 청소년들의 의식상태를 다양한 차원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용들이 풍부하고,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한국 청소년들의 국가관에 대해서도 ‘핑계있는 무덤’을 발견할 수 있는 조사결과들이 있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은 http://www.kiyd.re.kr에 게재된 보도자료에서 조사결과 첨부물 참조).
 
▲ 대안학교인 하자센터에서 장래를 준비하는 청소년들. http://www.haja.net/bbs     ©성남투데이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바른 국가관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이 부여되는 정치체제라는 점이 분명해져야 한다. 삼권으로 분립된 권력기구들과 그 구성원들은 제도적으로는 국가의 대리체이자 인식상으로는 국가를 알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국가는 이 같은 방식으로 기능하고 가시화된다는 뜻이다. 이 점 역시 분명해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청소년들이 정부의 정책과 정부 공직자들에 대한 불신감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가장 높았다는 조사결과는 주목되어야 한다.

대리체, 매개체로서의 정부 정책이나 정부 공직자에 대한 심한 불신은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태도를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엔 오랜 시기에 걸친 폭압적인 독재정권의 정치적 경험, 참여정부 들어서서 이른바 ‘분권형 국정운영시스템’ 채택으로 다소 이완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국가-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 경험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점도 고려될 수 있다. 요컨대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적인 대리체, 매개체를 통한  ‘정상적인’ 국가 인식, 태도가 아니라 독재정권에 대한 기억,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 경험 수준에서 ‘비정상적인-기형적인’ 국가 인식, 태도가 결정되고 있다는 맥락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현실은 국가를 국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국가가 아니라 ‘가국’(家國)이다! 가국이란 국가와 가부장적 가족이 포개져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국가의 기능, 가시화가 실현되는 방식 곧 한국에서의 국가 형태다. 국가가 국가인 것은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받는 개인들의 네트워크로서의 ‘시민사회’가 대칭될 경우에 한해서다. 그러나 한국에서 국가가 가국인 이유는 ‘가부장적 가족’이 부재하는 시민사회를 대신해서 국가에 대칭하기 때문이다. 가국체제에서는 국가 지배의 기초가 시민사회가 아니라 가부장적 가족이다.

언론들이 한국 청소년들의 국가관을 문제 삼으면서 부모세대를 실망시키느니, 이들의 국가관을 바로 잡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니 하고 일제히 발언한 것은 이 나라가 국가가 아닌 가국임을 입증한다. 부모세대를 실망시킨다는 담론? 부모세대란 가부장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가족을 뜻하며 국가를 대체하고 대신하는 효과를 노린다. 이 환유법은 곧 부모세대를 실망시킨다는 담론이 국가를 실망시킨다는 담론과 같다는 뜻이다! 국가관을 바로 잡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라는 담론도 마찬가지다. 주의하고 주의하시라!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국가와 관련된 모든 목청 높은 소리들은 전부 다 국가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한국 청소년들이 정부 정책과 정부 공직자들에 대한 불신감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가장 높았다는 조사결과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에 대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가장 회의적이었다는 조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국가가 국가다워야지!’라는 메시지다. 이는 부모세대의 몫이라는 점에서 지금 당장 한국 청소년들의 국가관이 문제가 있다고 청소년들을 잡는 일보다 우선한다! 돌이켜보면 이 나라의 역사적 경험은 외침을 수없이 받았고, 그 때마다 민초들은 얼마나 처절하게 저항했던가. 민초들은 일어설 때 알아서 분연히 일어선다! 오히려 외침과 지배를 받게 함으로써 민초들의 삶을 짓밟은 장본인들은 평소 바르게 정치하지 못한 위정자들, 국난 시 매국노로 나선 그들 아니었던가! 평소 국가를 떠들고, 국가관을 강조하던 그들!

이번 조사결과에서 보듯이 한국 청소년들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 여전히 낙관하고 있다. 또  탈국가적이며 지구사회를 생각하는 시각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동아시아 3국의 연합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언성부터 높이는 어른들을 향해 우물 안 개구리라는 한국 청소년들의 질타로 들리기도 한다. 이번 청소년개발원이 내놓은 보도자료의 메시지는 국가주의에 입각해 한국 청소년들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판단이다. 기사거리에 눈 먼 언론들의 앵무새 놀이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들 청소년들을 잡는데 나선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어른들은 무엇보다도 가국을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시민사회 만들기’에 최선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청소년에 대한 배려의 관점에선 청소년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해선 안된다. 어른들이 다 못한 가국을 국가로 전변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승·확산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맞는 다양한 사회참여의 길도 열어줘야 한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그들의 이유있는 이유들 또는 이유없는 이유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청소년들의 국가관 바로 세우기가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솔직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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