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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마을·특목고를 생각한다

[문화/하다말다] 우리 아이들, 어떻게 키우나?

벼리 | 기사입력 2006/08/14 [01:17]

영어마을·특목고를 생각한다

[문화/하다말다] 우리 아이들, 어떻게 키우나?

벼리 | 입력 : 2006/08/14 [01:17]
왜 영어만이냐? 그것은 국력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코메디 같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너나없이 ‘영어마을’이란다. 주지하는 대로 성남시정부도 남 따라가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민선3기 때 영어마을을 만든 바 있다. 그것도 생각없이 어느 날 불쑥 말이다. 교육자치도 안 되고 있는 마당에 지자체가 굳이 무리하게 나설 일도 아닌데, 그렇게도 할 일이 없나?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얼마나 갈지.

영어마을에 대해선 그저 한 마디면 족하다. 건강한 정신, 건강한 체력은 국력이지만, 영어 중심이라면 그것은 결코 국력이 아니다! 이 사실! 영어 회화가 꼭 필요한 분야가 있다. 예외없이 영어 하는 외국인들을 직업적으로 상대하는 경우들이다. 이들 직업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인사동 나가봐라. 일종의 관광업인 호떡 파는 장사꾼이 영어, 일어를 한다.

오히려 나라의 장래,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아이들이 지구촌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문화를 배우고 그들의 장점을 자신의 장래 삶에 활용할 수 있도록 미래, 다양성, 수요·공급의 적정성이 고려된 어학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만 아이들이 배우는 외국어는 국력이 된다. 특별한 얘기도 아니고 상식적인 얘기다.

어떤 외국어를 배우더라도 반드시 아이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은 우리말과 우리말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적인 태도를 언어사대주의와 엿 바꿔먹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가령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나면 영어를 써야 하나? 아니다. 알아도 일부러 쓰지 않는 것이 맞다. 한글과 친절한 보디 랭귀지를 구사하면 오히려 상대가 감동 먹는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이 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우리보다 못산다고 깔보고 막 대하는 일부 한국사람들의 태도는 국치다. 일종의 자기민족 내지 자국 우월주의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보고 굽신거리는 사대주의와 도낀개낀이다. 영어마을로 대변되는 영어열풍은 사대주의의 발로에 다름아니다.

자기 것을 잘 알면 알수록 남의 것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또 그 길도 알게 된다. 자기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의 것이나 이용할 궁리나 하면 영락없이 이도저도 아닌 얼치기로 귀결되고 만다. 지금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우리말로 삶의 다양한 면모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아이들을 키워내는 일이다. 그래야 가령 미국과도 바꾸지 않을 정치가가 나오고, 프랑스와도 바꾸지 않을 철학자가 나오고, 러시아와도 바꾸지 않을 문호가 나오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프랑스 하면 언어, 철학, 예술, 문화 등 ‘문화 프랑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프랑스는 문화강국이다. 그런 프랑스에, 아는가? 그 유명한 ‘반영어법’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영어 사용의 남발을 금지하고 위반시 벌금을 물게 하는 이 법은 프랑스식 문화보호주의의 산물이다. 그만큼 프랑스사람들은 자기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한다. 배워야 한다. 

▲ <인상: 해돋이>.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이 그림에서 어떤 하나가 다른 것들에 우월한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조화, 상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 성남투데이

특목고? 특별한 인간을 키워 어디다 쓸 건데!

민선4기 들어 또 하나의 코메디가 등장했다. ‘특목고’다. 그것도 내가 교육을 받고 살아오고 내 금쪽 같은 새끼들이 사는 구시가지에 말이다. 쉽게 말해서 아이들을 특별하게 키우자는 것이다. 아이들을 특별하게 키워서 어디에 써먹을 건데? 사람 잡는데? 자고로 특별하게 키운 애들치고 제대로 사람들과 섞이고 어울리는 법 보지 못했다! 대체 특별한 인간이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리인가!

이러니까 이 나라가 ‘삼류들’의 나라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소위 엘리트들이 닭짓하고 사실상 깽판치는 삼류들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분명 삼류나라는 아니다. 이 나라가 이만큼 먹고 살게 되고 민주주의를 하게 된 것도, 어느 정도 다양성을 갖춘 사회를 이루게 된 것도 다 제 자리에서 성실히 재주껏 일해 온 고만고만한 시민들 덕분이다. 결코 삼류에 불과한 엘리트들 덕분이 아니다. 

삼류들은 인간 교육에 관한 한, 환각상태에 빠져 있다. ‘특별한 인간’을 꿈꾼다는 것이다. 그것은 돈을 듬뿍 처발라서라도 길러낸 ‘우수한 인간’이 ‘특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왜 착각이고, 환각인가? 역사가 증명한다. 특별한 인간으로 착각하는 인간들은 그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을 누르고 짓밟아오지 않았는가. 특별한 인간 대접을 받으려는 우수한 인간이란 서로 어울려 사는 세계를 부정하는 반인간적인 태도를 드러내오지 않았는가.

인간은 유형적으로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서로 어울려 사는 세계를 만드는 능력, 모든 인간이 평생을 거쳐 배우고 수행해야 할 능력이다. 다른 하나는 저마다의 재능이다. 전자가 근본적이라면 후자는 기능적이다. 전자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능력이라면 후자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우수한 인간이란 아무리 곱게 봐줘도 후자에서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대체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엑스트라인가. 특별하게 대접받기 위해 우수한 인간으로 교육받은 인간은 주인공이고 나처럼 바닥을 기며 살아온 인간은 엑스트라인가. 삼류들은 이 나라를 맹모삼천(孟母三遷)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별별 짓을 다한다. 핵심은 서로 어울려 사는 세계를 만드는 능력을 길러주지 않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재능 교육을 심히 왜곡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새끼들에게, 모든 아이들에게 소망한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고맙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아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이게 서로 어울려 살기 위한 전부인데 몸으로 깨치기가 쉽지 않으니! 자기답게 살아가기 위해 제 몸에 맞는 재주 하나쯤 학교 안팎의 너른 지평에서 배우고 그 재주 맘껏 부렸으면 좋겠다. 더도 덜도 아니다.

보라, 바다 위로 번지는 황홀한 저 빛의 인상들! 모든 사물들은 생생하게 꿈틀거린다. 사물들은 주제이고 배경이며 따라서 주제도 배경도 아니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 태양이며, 태양은 결코 태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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