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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다

[문화/하다말다] 짖어댈까? 바라볼까?

벼리 | 기사입력 2006/08/17 [04:13]

바라본다

[문화/하다말다] 짖어댈까? 바라볼까?

벼리 | 입력 : 2006/08/17 [04:13]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중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쟁이가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다. 나이 쉰 살 이전까지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없이 웃을 뿐이었다.

탁오(1527-1602)가 50대 중반에 쓴 글의 일부다. 이 글에서 나는 ‘짖어댄다’는 말을 발견한다. 이 말을 발견하고는 직감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을 떠올린다.

바라본다. 다른 개들을 따라 짖어대는 개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영문도 모른 채 짖어대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 나는 ‘테오리아(theoria)’라는 말을 떠올린다. 기원전 6세기 경 피타고라스가 올림푸스 산정 올림피아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삶을 3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쓴 말.

최하위의 삶 : 경기를 이용해 내기하거나 장사한다. 중간의 삶 : 규칙에 따라 경기에 참여한다. 최상위의 삶 : 경기를 바라본다.

▲ 지금 나는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본다. 올 여름 짧은 가족여행에서 바닷가에 내려앉은 갈매기들이 거기에 있다.     © 성남투데이

테오리아는 ‘바라본다’는 뜻을 가진 고대 희랍어다. 테오리아는 그 의미가 ‘눈으로 본다’에 그치지 않는다. 피타고라스가 삶을 3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최상위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서 썼다는 이유가 유력한 증거.

테오리아는 곧 ‘생각한다’는 의미. 이 때 생각한다는 현상의 이면을 깨친다는 의미를 갖는다. 테오리아의 ‘본다’, ‘깨친다’는 두 가지 의미는 이후 미학과 회화에서 ‘관조’로, 철학에서 ‘명상’으로 각각 의미화되었다. 다시 나는 내가 화분에 심고 철철이 즐기는 풀을 떠올린다.

조선산매화. 나팔꽃. 춘란. 다알리아. 봉선화. 수선화. 동백꽃. 이렇게 이름만 늘어놓아도 가슴 뭉클해진다. 워낙 풀을 좋아한다. 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냐. 시나브로 기르고 애상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수컷의 거친 심정을 다스리는 데 이만한 취미가 없음을.

풀도 목말라 한다. 내가 목말라 하는 것처럼. 아니다. 나도 목말라 한다. 풀이 목말라 하는 것처럼. 깨침! 기쁨! 물 먹은 풀들의 그 생동함, 그 빛깔! 그래서 물을 준다. 이 깨침, 기쁨은 어디서 오는가? 바라본다.

어디 그 뿐이랴. 바라본다, 물준다는 어느 새 풀에 대한 배려. 날 좀 봐주세요! 목 말라요! 그래, 바라본다, 듬뿍 물을 준다. 말 못하는 풀이 아니다. 눈이 없는 풀이 아니다. 어느 새 나를 바라보며 말 거는 풀이다. 이미 나와 대화하고 나누는 풀이다. 그러므로 바라본다, 물준다는 풀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윤리행위다. 풀과 사람 사이, 풀과 사람을 아우른 상생의 윤리, 바로 그것이다.

별 것도 아닌 것, 짖어대는 것일까? 고만고만하게 사는 내겐 삶이다. 딴에는 풀내나고 살내나는 삶 그것이다. 아니다. 바라보지도 않고 물도 주지 않아 말라 죽이는 풀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삶이 아닌 것은, 풀내나지 않고 살내나지 않은 것은 전부가 가짜다.

가시적인 것이 비가시적인 것으로 고양되었다. 풀이 목말라 한다(생명)는 원리-풀과 사람이 나눈다(존재)는 원리-풀과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산다(윤리)는 원리, 어떻게 체득할 수 있을까? 애오라지 모를 뿐?(不識, 達磨) 놀아?(遊, 莊子)? 무관심함?(disinterestedness, I.Kant) 적당한 마음의 거리두기?(proper psychical distance, E.Bullough)

다시 나는 좋아하는 카수 한영애의 노래를 듣는다.

‘바라본다!’

(지금 나는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본다. 올 여름 짧은 가족여행에서 바닷가에 내려앉은 갈매기들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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