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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문화/하다말다〕집단의 비이성

벼리 | 기사입력 2006/07/25 [16:18]

그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문화/하다말다〕집단의 비이성

벼리 | 입력 : 2006/07/25 [16:18]
그들은 아마 상대가 힘이 없다고 깔보는 것 같다. 그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이 힘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들을 지켜보는 언론이 그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부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이 되던 안 되던 그냥그냥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이번에 교섭단체 조례를 발의하면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의회에 1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으로 못을 박았다. 이유는? 없다. 명철한 눈에는 그 이유가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공식적인 게 있다면 교섭단체 조례를 대표발의한 한나라당 이재호 의원이 밝힌 조례개정 이유다.

“5.31지방선거에서 정당추천을 받은 의원들이 5대 의회에 등원함에 따라 기초의회의 정당책임정치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정당의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효율적인 의회 운영을 위해 교섭단체와 관련해 조례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이 이유는 한나라당으로부터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10인 이상으로 밀어붙인 이유다. 돌아버리겠다. 이 이유는 정확히 말하면 “왜 10인 이상이냐?”는 물음에 ‘동문서답’이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봉창 두들기는 소리’다.

여기에 한나라당 한성심 의원은 9인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제시, 한나라당은 이 수정안을 관철시켰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 의원이 9를 내세운 이유 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특별위원회를 포함, 상임위가 7개임을 이유 삼았다. 그럼? 7인으로 수정안을 제시했어야 맞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방증적인 이유는 열린우리당이 주장하는 4인은 기존 상임위가 4개라는 것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의원은 잠시 7을 9로 착각했거나 아니면 이른바 ‘따라나오지 않는 결론의 오류’ 곧 전제나 증거로부터 합리적으로 추론되지 않는 결론을 낸 셈이다.

한 의원이 제안한 수정안은 정확히 말하면 그럴 듯하게 보이는(단지 그럴듯하게 보일 뿐이다!) 구실을 붙인 한나라당의 ‘생색내기’일 뿐이다. 10에서 1을 뺀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한나라당이 지장 받을 일은 전혀 없다. 10과 9의 의미상의 차이는 사실상 없다. ‘도낀개낀’그것이다.

눈길을 이번에는 시정부로 돌려보자. 그 동안 분당 중앙공원에서 어린이 체험 및 교육적 차원에서 진행해오던 어린이 벼룩장터가 시정부의 불허방침으로 더 이상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왜 못하게 하냐?”라는 시민들의 물음에 시정부의 답변은 “어린이들이 공원에서 사고파는 행위 곧 상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짜 돌아버린다! 어린이 벼룩시장이 상행위라니! 이는 체험과 교육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어린이 벼룩시장을 조롱하고 왜곡하는 발언이다. 시정부의 답변은 곧 시민들의 “왜 못하게 하나?”라는 물음의 진지함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진지함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다.

브리핑 룸 폐쇄에 대해 “왜 폐쇄했냐?”라는 질문에 시정부의 답변은 또 어떠한가? “시청사가 좁아서”다. 이 경우는 논점을 피해나가는 경우다. 왜 논점을 피할까? 브리핑 룸을 폐쇄한 진짜 이유를 은폐하기 위해서다.

거꾸로 시의 답변이 은폐 목적이 아닌 진심이라면 시민들은 시정부에 이렇게 요구할 수 있다. “시청사도 좁은 데 시장실을 폐쇄해 봐!”

한나라당의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대한 발언들, 어린이벼룩시장 사용장소 불허 및 브리핑 룸 폐쇄에 대한 시정부의 발언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뭐라고뭐라고 말했지만 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체제 속에서 권력을 가진 그들은 최대한 그 권력을 부리는 것이 목표다. 어쩌면 이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겉으론 그럴 듯하게 보이는 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실은 구실이며 이 점에서 그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당론’이란 이름으로 또는 ‘공익’의 이름으로 온갖 구실을 대고 있지만, 그것은 주어진 체제 속에서, 체제의 논리에 따라 굴러가는 ‘집단적 비이성’의 메타포일 뿐이다. 체제의 논리에 충실한 집단적 비이성은 홀딱 벗겨놓으면 ‘지배적인의 힘의 행사’만이 남는다. 힘 쓰지 못해 안달난 그 극단의 심리상태!

그 지배적인 힘이 합법적으로 행사되거나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신드롬’일 뿐이다. ‘지나친 몰입’, ‘생각없는 동조’, ‘과대평가’가 신드롬을 간파하는 키 워드다. 모두가 거기에 매달리는 신드롬은 종종 집단적 광기로까지 치닫기도 한다. 역사상 파시즘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인간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개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체제나 집단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질곡이 되는 것이다. 그 체제나 집단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개인들에게, 그들의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진지한 실천에 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끝내 파멸을 몰고오는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모두가 거기에 매달리는 신드롬, 그것을 낳는 체제의 논리, 집단의 논리는 결코 문제의 ‘다차원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단순함, 단순함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무지함이 체제와 집단 앞에 떠오를 뿐이다. 세상이 얼마나 다른 것들, 얼마나 다른 의미들로 이루어지는지, 이 다름들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내는 다차원적인 조합으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알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신드롬은 신드롬으로 끝나고 만다. 한 때 신드롬에 휘말렸던 관중들은 떠나 버리고 그 한복판에 있던 스타들은 그 신드롬의 무게에 눌려 허리가 꺽이고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마침내 시대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막차가 떠나간 훨씬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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