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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느 계절인가?

[문화/하다말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벼리 | 기사입력 2006/08/10 [07:50]

당신은 지금 어느 계절인가?

[문화/하다말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벼리 | 입력 : 2006/08/10 [07:50]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순환 그리고 재순환의 시작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생생한 그림으로 심상에 그려진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구절이다. 의미보다는 그 아름다움이 더 와 닿는다. 도록에서 본 것이지만 마치 추사 김정희가 ‘꽃은 노랗고 열매는 붉다’(黃花朱實)고 쓴 것 같은.

의미와 아름다움은 어느 새 계절과 삶을 오우버랩시킨다. 또 계절이라는 디제시스(diegesis, 허구세계)는 삶이라는 현실로 다가온다. 삶과 무관한 계절이란 있을 수 없고, 계절의 순환과 그 재순환의 시작은 삶의 순환과 재순환의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은유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     © 성남투데이

삶은 순환한다. 물리적인 의미에서 생로병사 자체가 하나의 순환이며 이 순환은 시간적인 의미에서든 공간적인 의미에서든 내가 아닌 타자들의 생로병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보다 큰 순환의 일부다. 그렇다. 삶은 순환이다.

삶은 물리적인 의미로만 파악되지 않는다. 생로병사에는 희노애락이 따르기 때문이다. 삶으로부터 오는 이런저런 또는 숫한 의미들, 느낌들도 따라 순환하는 것이다. 내가 슬퍼하듯 내 후대가 슬퍼하고, 내가 노여워하듯 내 이웃들이 노여워하는 것이다. 그렇다. 삶은 총체적인 의미에서도 순환이다.
 
불가에서는 순환을 윤회(輪廻)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삶에 대한 조롱이다. 삶의 순환을 반복적인 수레바퀴 구르기로 비유한 말이기 때문이다. 왜 조롱하는가? 조롱받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삶의 순환 자체를 보지 못한다는 데서 찾는다.

늙고 싶지 않다고, 병들고 싶지 않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사람들은 갖은 발버둥을 친다. 심지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절규하는 경우도 보았다. 의미에 휘둘려 말과 생각의 바벨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온갖 애증에 사로잡혀 나와 남을 구별짓고 선악을 반복한다. 이것은 삶의 평정이 아니라 삶의 불안 그 자체다. 이 같은,

삶은 충분히 조롱받을 만하다. 어찌 늙음을, 병을, 죽음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그 유일한 태어남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말이란 무엇인가? 생각이란 무엇인가? 보는 대로 말하면 그만 아닌가. 생각나는 대로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말을 들어주면 그만 아닌가. 생각을 받아들이면 그만 아닌가. 관계를 통해 이어주면 그만 아닌가. 왜 순환하며, 왜 다시 순환을 시작하려는가!

사념없이 있는 그대로 보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김기덕 감독이 2003년에 제작한 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는 생각지도 않게 며칠 전 늦은 밤 시간에 케이블방송을 통해 우연히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제목처럼 네 계절과 다시 시작하는 봄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계절 위에서 펼쳐지는 삶이다. 삶의 과정 전부가 각각의 계절 위에 압축되어 있다(자세한 줄거리는 http://vod.naver.com/start.jsp. 참조).

이 영화는 일반적으로 삶의 순환을 깨고 깨침을 얻는 과정을 그리는 구도영화와는 다르다.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봄과 재순환을 시작하는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보기에 김 감독이 깨침의 과정에 이르는 네 계절에 대입되는 의미와 미를 서사와 영상을 통해 순차적으로 담아냈으면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그 전부를 무로 돌리는 자기부정의 장치로 보인다.

이 같은 장치는 깊이가 있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흔히 맛보게 되는 카타르시스를 부정한다. 마치 완성하자마자 때려 부수는 격이다. 완성, 성취에 대한 구토, 탈주, 그런 느낌이다. 김 감독은 왜 이런 의외의 장치를 도입했을까?

그것은 삶의 순환을 끊어내는 일의 지난함 그리고 그러므로 역설적(逆說的)으로 순환의 절단을 향한 강렬한 도전이라는 이중적 메시지의 역설(力說)은 아닐까? 그것은 니체의 주사위 놀이를 연상케 한다. 니체가 주사위를 던지며 말했다. “한번 더!”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영화의 결말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김 감독의 영화는 깨치기 전과 깨친 뒤의 삶이 모양은 다르지 않지만 그 간격에는 삶의 비상한 고양이 있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같은 메시지는 영상이나 언어로서는 전하기 쉽지 않고, 감독의 역량과 관계되는 표현의 문제 못지않게 수용자이자 해독자인 관객의 몫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독특한 결말을 그려낸 김 감독의 장치는 이 같은 삶의 고양을 그려내는 일에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는 이 영화를 불교적 색채가 강한 구도영화라기보다는 인간학적인 영화라고 평하고 싶은 내가 인간이 삶에서 발견하고 깨치게 되는 ‘그것’이 의미와 관련되든 무의미와 관련되든 결코 인간의 문제 밖에 놓여 있지 않다는 믿음과 관련되어 있다.

언젠가 나는 어느 미술가의 일련의 특징적인 그림들을 다 보고나서 그림으로 철학한다고 평문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럼 김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영화로 철학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삶을 영화로 산다. 그는 영화로 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느 게절을 사는가?”

*. 보충 하나 : 이 영화를 보고난 후 국내에서는 자신이 만든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는 다소 오만에 찬 발언으로 비쳐질 수 있는 김 감독의 발언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이 발언을 읽는 데서 중요한 것은 작품성이냐 대중성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겐 작품 중심의 문화적 향유보다는 가령 흥행이나 스타 중심과 같은 작품 부수적인 효과 위주의 문화적 향유 풍토에 대한 분노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프로덕션 준비단계부터 독일의 아트하우스 판도라필름이 공동제작사로, 유럽영화시장의 허브 바바리아필름이 배급사로 참여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역량있는 감독을 세계적인 문화브랜드화하는 가능성을 모색한 영화다. 이 같은 대조적인 모습은 한국의 대중문화 현실을 되새기게 한다. 대중문화의 양대산맥의 하나인 영화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문화정책 당국의 깊이 있는 반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 보충 둘 : 이 영화를 보고 이곳에 뭐든 한 마디씩 내게도 들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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