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마이신】낭만없는 세상에 낙타는 있는가?

나의 낙타는 불륜영화 화양연화

이삼경 | 기사입력 2011/05/18 [05:22]

【마이신】낭만없는 세상에 낙타는 있는가?

나의 낙타는 불륜영화 화양연화

이삼경 | 입력 : 2011/05/18 [05:22]
▲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장면. 불륜을 소제로 했으면서도 격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성남투데이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한국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둔 영화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때로 번역되는 <花樣年華>는 그러나 초라한 영화는 결코 아닌 것 같다. 뻔한, 어찌 보면 아주 통속적인 소제를 다뤘으면서도 격이 있다고 본 까닭이다.

영화가 한국에 개봉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거금 4만원을 들여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소장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 판단은 적중했다. 생의 고비에서 허기질 때마다 보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있는 남자와 여자가 어처구니없는 계기로 가까워진다. 그 계기는 둘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두 사람은 묘한 감정에 빠진다. 그 감정은 사랑의 감정으로 승화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들의 감정을 지독하리만치 드러내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의 가슴에 기댈지언정 포옹은 하지 않는다. 흔한 손잡기와 키스도 없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방에 있게 되었을 때도 어떤 기대상황(?)은 나타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자기 절제는 느리게, 느리게 화면에서 전개된다. 그런 까닭에 두 사람이 서로를 아주 고통스럽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의 깊이가 대단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슬로우 모션, 스톱 모션은 적절한 도구인 듯하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첼로 선율인 삽입곡 Shigeru Uchiyama의 <Yumeji> 테마도 느린 사랑을 더욱 애절하게 한다. 그 느린 사랑은 비애일 것이다. 동시에 격이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웅숭깊음일 것이다.

○…철지난 흑백영화 같은 것을 꺼내들고서 웬 사랑타령이냐고 타박을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눈 씻고 도처에서 찾아봐도 낭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낭만없는 거리에서, 술집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불러봤자 나오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대신 물질적 이해와 정치적 흥정만이 아주 정치하게 앞을 가로막을 뿐이다. 어디로 가야하나, 이 사막에서….

화양연화가 우스꽝스럽게도 한 순간 낙타 구실을 한다. 이런 때는 비디오테이프 등을 사 모으는 편집증이 후회가 되지 않는다. 낙타 등에 걸터앉아 소리쳐 보는 거야. “술을 마시려거든 목숨 걸고 마셔라,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걸고 해라.”
 
  • 4·11총선은 쌈박한 혁명!
  • 신상진·신영수 씨 무엇을 하셨습니까?
  • 위대한 민주주의자(?) 마인황 씨!
  • 성남중원구 야권후보들이여, 무엇을 꿈꾸시나?
  • 여전히 문제는 민주주의다
  • 【마이신】 마흔 잔치도 끝났다!
  • 【마이신】 <나꼼수>가 수준이하라고?
  • 【마이신】 너도 나도 권력자
  • 【마이신】 이재명 시장은 ‘업적’을 지우라
  • 【마이신】 줄줄이 알사탕 같은 후보들
  • 【마이신】윤원석 씨, 남의 콘텐츠 베끼다?
  • 【마이신】 반성 엿보이지 않는 이상락 씨!
  • 【마이신】 그들의 유치찬란한 굿판!
  • 【마이신】다시 한번 탄핵돌이?
  • 【마이신】삽질 정치보다 나은 3류 영화 ‘써니’의 사회학
  • 【마이신】“1천 억 원이 시 한 줄보다 못하다”
  • 【마이신】기자정신 사라진 지역언론
  • 【마이신】본질이 본질 아닐 수도 있다!
  • 【마이신】자기 스토리 없는 진보주의
  • 【마이신】훈육돼 교태부리는 ‘우리들’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